구한말의 정치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월남 이상재(李商在) 선생이 1850년 10월 26일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1867년 과거에 낙방한 뒤 서울에서 박정양과 사귀어 l0여년 간 그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하기도 했다. 1881년 박정양이 신사유람단의 한 사람으로 일본에 갈 때 수행원 역을 하면서, 동행했던 홍영식'김옥균 등과 깊이 사귀었다. 이후 여러가지 관직을 거친 그는 독립협회 부회장이 되어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1898년 독립협회사건으로 인해 구금됐다가 석방됐다.
1902년 개혁당 사건으로 3년 간 복역하는 동안 그리스도교도가 됐다. 출옥 후 1906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종교부 총무 및 교육부장을 겸임하면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불타는 민족애와 신앙심을 심어주면서 민족의 미래를 기약해 나갔다.
고도의 해학으로 우리 겨레에 희망과 웃음을 가져다 주기도 한 그는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한 인간상 만들기에도 힘을 쏟았다.
3'1운동 민족대표로 참여교섭을 받았으나 참가를 거부하기도 한 그는 1923년에는 소년연합척후대(보이스카우트) 초대 총재가 됐고, 이듬해 조선일보사 사장에 취임했다.
1927년 신간회 초대 회장에 추대됐지만 곧 병사했다. 장례는 한국 최초의 사회장(社會葬)으로 집행됐다.
조선 겨레의 미래를 위해 좌우를 가리지 않고 한마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게 한 위대한 민족 지도자로서 그는 기억되고 있다.
▲1907년 동양척식(주) 설립 기본계획 완성 ▲1909년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사살 ▲1950년 유엔군 원산 상륙 ▲1979년 10'26 사태 발생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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