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스탕달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관람한 후 심장이 뛰고 무릎에 힘이 빠지는 증세를 한달간 앓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뛰어난 예술품을 감상한 뒤 받는 흥분 증후군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한다. 스탕달은 오페라광이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신발이 헤지도록 유럽의 뭇 오페라하우스를 찾아다녔다. 그는 "오페라를 보기 위해서라면 여러 날을 감옥에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잘 만들어진 오페라를 보는 쾌감은 비할 데 없이 크다. 오페라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까. 그 속살을 들여다보자.
◇오페라, 스펙터클의 유혹
인간의 시각 중추를 만족시키기 위해 오페라는 스펙터클의 유혹에 자주 빠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제작비가 50억~70억원에 이르는 블록버스터형 야외오페라가 쟁명했다. 음악만을 놓고 볼 때 야외 오페라는 실내오페라보다 감동의 질이 떨어진다.
야외오페라가 아니더라도 오페라는 비싼 예술이다. 정명훈이 지휘하고 한·불·일 3국 오페라 관계자들이 공동 제작한 '카르멘'의 경우 실내오페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공연 제작비가 30억원이나 됐다. 서울의 1급 오페라단이 공연하는 작품의 경우 적어도 몇억원씩의 제작비가 들어간다. 대구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도 작품당 제작비가 억대를 넘는 것이 흔하다.
◇오페라는 비싼 예술
오페라 제작에 많은 돈이 드는 것은 출연진과 스태프 등 인력 동원 규모가 타 음악 장르에 비하기 힘들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이달 21~23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프린스 이고르'를 공연한 러시아 무소르그스키극장 오페라단을 초청하는데 대구국제오페라조직위 측은 3억원에 가까운 돈을 썼다. 일개 오페라단을 초청하는데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쓰나 의구심이 들겠지만, 내막을 따져보면 절로 수긍이 된다. 대구 공연을 위해 이 오페라단은 전속 성악가와 오케스트라·합창단·발레단·스태프 등 무려 200여명을 데려왔다. 총 초청비는 비행기삯과 한국 체류비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이 오페라단은 3일 공연에 유료관객 3천500명을 불러들였다. 초청비를 관객 수로 나누면 10만원 가까이 되지만, 정작 이 오페라의 관람료는 1만~7만원이었다. 표를 팔아서는 도저히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없는 구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공연이 기획된 것은 시민을 위한 시 차원의 문화 투자라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이렇듯 오페라 공연의 경우 대부분 매표 수입만으로는 제작비를 건지기도 힘들다. 결국 행정당국의 재정 지원이나 민간기업의 스폰서십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페라 한편이 만들어지기까지
오페라 공연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작품 선정이다. 작품을 고르고 나면 사업계획을 수립한다. 오케스트라·합창단·무대세트·의상·출연진 수 등이 이때 대략 결정된다. 출연진이 결정되고 나면 성악가들의 연습이 시작된다. 공연 7,8개월 전에 성악가들이 연습을 시작하는 서양 오페라단들과 달리 국내 오페라단의 경우 두세 달 전에 연습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강의와 레슨이 주 수입원인 국내 성악인들의 사정상 시간을 많이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내 성악인들의 처우는 열악한 편이다. 서울의 일급 오페라단의 경우 A급 성악가에게는 400만~500만원의 개런티가 책정되지만, 대구의 오페라단이 주는 출연료는 그보다 많이 낮다. 오페라 연습과 공연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을 감안하면 차비·기름값에 불과한 수준이다. 일부 민간 오페라단에서는 그나마 출연 성악가들에게 표 판매 또는 스폰서 부담마저 지운다.
오페라 공연을 위한 작품 선정에서부터 캐스팅, 제작·지휘 등을 총괄하는 이는 예술감독이다. 오페라 공연 후 무대 인사 때 가장 늦게 나타나 인사하는 정장차림의 사람을 예술감독이라 보면 틀림이 없다. 극 요소가 강한 오페라의 특성상 연출은 매우 중요하다. 연출자는 성악가의 연기지도에서부터 무대·의상 등의 전체적인 방향을 정한다. 오케스트라는 공연 한 달 전쯤부터 성악가들과 호흡을 맞춘다.
◇대구 오페라계의 과제
무대 세트가 더 웅장하고 사실적이면 좋겠지만, 실물세트와 시각적 쾌감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관객들의 성향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반면 서양에서는 프로젝션 화면이나 조명으로 배경을 처리하면서 음악에 충실도를 높이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오페라단들은 대개 한 작품을 1~3회 공연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면서도 단기 공연만 하는 국내 오페라계의 관행에는 문제가 있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오페라단들이 장기 공연을 기피하는 이유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출연료 등 추가 부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오페라단들이 무대와 소품을 보관하는 창고를 갖추지 못한 탓에, 큰돈을 들여 만든 무대가 한 번 사용된 뒤 폐기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음악·무대·조명·분장·연출 등 예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의 수준이 높아야 좋은 오페라를 만들 수 있다. 무대·분장·조명·연출 등 대구의 인력 기반은 매우 열악한 형편이다. 이 때문에 대구의 문화예술인들은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일회성 보여주기식 성과를 내는 것보다 좋은 오페라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전초 역할에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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