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민의 외면한 대통령·정치권 모두 책임"

입력 2004-10-22 11:53:49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결정을 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하게 했던 헌법재판소가 21일에는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위헌을 결정, 대통령과 열리우리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국민들은 국회가 입법한 법률을 그동안 들어본 적조차 없는 관습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무효임을 결정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가 도대체 어떠한 기관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은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세운 주요공약 중의 하나였다. 또 이는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수도이전의 개념이 천도이든 행정수도 이전이든 서울이라는 곳이 600년의 역사적 전통을 가진 도시라는 점을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주민이 1천만명을 넘고, 수도권 주민까지 합할 경우 전체 국민의 40%에 이르며, 모든 정치·경제·문화의 집중이 이루어져 있음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장기적인 검토와 계획이 따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중시한다던 대통령은 수도이전을 바라보는 국민의 생각이 대통령 선거때와는 많이 달라졌음을 애써 무시한 채 불안할 정도로 조급하게 밀어붙였다. 또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는 이같이 중요한 법을 제정함에 있어 80명에 가까운 의원이 투표에 불참하고, 14명이 기권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으며(기권도 의사표시방법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국민은 기권하라고 대표를 뽑은 것이 아닐 것이다.

이 법의 즉각적인 시행에 많은 문제가 있음이 밝혀진 후에도 이를 보완하거나 개정하는 등의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우리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의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입법을 하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배반하는 것이어서 위헌이라는 설명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즉, 국회가 이 특별법을 입법함에 있어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의사(여지껏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선택이 곧 국민의 선택이라고 생각해 온 듯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고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를 충분히 수렴하고, 전원이 투표에 참여하여 압도적인 찬성으로 의결하였다면, 아마도 헌법재판소가 헌법학자들 간에도 이견이 분분한 '관습헌법'을 근거로 위헌을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순수 사법기관인 법원과 달리 정치적인 요소도 판단할 수 있는 헌법기관인 만큼, 앞으로 대통령과 국회는 국민의 참된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입법을 하여 국민을 또다시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위헌결정은 과반수 이상의 국민이 문제조항을 개정하여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는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게 다시한번 생각할 기회를 줄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대해 대통령은 그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국민 앞에 즉각 밝혀야 할 것이며,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기득권 세력이 국가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와 함께 법의 제정에 앞장섰던 야당인 한나라당은 위헌결정에 대해 희희낙락하는 행태를 버리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할 것이다.

이 나라의 제1야당이 계속해서 여당의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만 얻으려고 해서야 국민이 어떻게 희망을 가지고 어려운 경제현실을 헤쳐 나갈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위헌 결정과는 별개로 중앙권력의 분산 및 지방균형발전의 필요성은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는 터이므로 이를 위한 노력에는 여당, 야당의 구별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정광모(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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