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입력 2004-10-22 09:24:14

잃어버린 천국 갈라파고스/ 마이클 도르소 지음/ 꿈꾸는 돌 펴냄

1835년 9월 15일 찰스 다윈을 태운 영국의 탐사선 비글호가 마침내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한다. 남아메리카 해안을 2년 동안 탐사하겠다는 목적으로 영국을 떠난 지 4년째 되는 해였다. 적도 바로 위, 에콰도르에서 965km 떨어져 있는 태평양의 작은 군도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논란에 휩싸인 책 가운데 하나인 '종의 기원'이 싹을 틔운 것이다.

하지만 이 섬에 대한 다윈의 첫 인상은 음울하기 그지없었다. "현무암이 가득한 울퉁불퉁한 평지 곳곳에는 불에 그을려 자라다 만 듯한 덤불이 널려 있다. 다른 생명의 흔적은 거의 없다. 대낮의 햇볕에 바짝 말라붙어 있는 땅에서 올라오는 공기는 찌는 듯이 답답한 것이 마치 난로에서 올라오는 열기 같다."

170여년이 지난 현재, 당시 영국와 미국 포경선과 해적선의 본거지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갈라파고스 제도는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생태공원이 됐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섬,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 이구아나와 코끼리 육지 거북, 핀치 등 희귀한 동식물의 보고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다.

그들에게 갈라파고스는 그저 또 하나의 테마공원에 불과하다. 인간들이 유람선을 타고 가서 기슭에 내릴 수 있는 곳. 거의 두 세기 전 젊은 찰스 다윈이 발을 디뎠던 것과 똑같은 용암이 뒤덮인 땅을 걸을 수 있는 곳일 뿐이다.

'잃어버린 천국 갈라파고스'는 그곳에 사는 동·식물이 아닌 사람들이 주인공인 책이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섬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갈라파고스 제도의 아픔과 매력을 보여준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갈라파고스 제도에 3년 간 머물면서 아름다움 뒤에 적지 않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섬의 모습과 파괴되어 가는 갈라파고스 제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특히 마치 쪽빛 바다 한가운데서 시원한 바닷바람에 몸을 맡긴 듯 생생하고 유려하게 묘사되는 풍경은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재미다.

전 세계인들 대다수가 책이나 잡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보여 주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천혜의 광경에 신비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 광경은 딱 97%만 옳다. 갈라파고스 제도 전체 면적의 97%가 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 3%의 면적에 무려 3만여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하니 생명이 살아남기엔 지독하게 잔인한 섬의 환경은 이곳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에게 힘과 수완, 그리고 겸손한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

이곳에 남아서 끝까지 잘 견뎌낸 사람들 사이에는 잘 참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무언의 존경심이 있다. 이는 갈라파고스에 속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다.

환경운동가들은 갈라파고스 제도가 '자연이라는 왕관의 깨지기 쉽고 귀하기 그지없는 보석'이라고 말한다. 교란되지 않은 생명 적응과 진화의 배양접시이자 전 세계 자연과학자들의 메카라는 것.

그러나 말뿐인 환경보존과 제 모습을 잃어가는 많은 섬들, 정부의 부정부패나 경제적 어려움, 사람들의 인식 부족 등은 갈라파고스 제도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위기에 처한 갈라파고스 제도에 여전히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말한다. 갈라파고스의 숭고함과 힘을 믿는 사람들과 그들의 노력이 바로 희망인 것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