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역사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다

입력 2004-10-21 11:39:37

청산, 근절, 개혁, 바로 세우기.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들이다.

나라를 맡은 사람들이 의욕적으로 외치는 구호들은 정권마다 각양각색이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전해지지 않는다.

일찍이 철학자 칼 포퍼는 이런 조언을 들려준 적이 있다.

"추상적인 선(善)을 실현하려고 하지 말고 구체적인 악(惡)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 정치적 수단을 사용하여 행복을 이룩하려고 하지 말라. 구체적인 비참함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직접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가난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

근사한 구호로 사회개혁을 외치기보다는 한 사회가 갖고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역량을 집중하라는 말이다.

공허한 구호들이 난무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실제로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20세기 100년은 이상 사회의 건설이라는 염원을 지녔던 정치가들이 엄청난 희생을 지불하면서 사회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참혹함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사람들에게 남겨주고 말았다.

근래에 벤저민 양이 쓴 '덩샤오핑 평전'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작가는 1949년에서 1976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 안에서 일어났던 극적 사건들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거의 대부분은 마오쩌둥이라는 지도자의 정신 상태와 행동양식이 유발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중국 역사를 통해서 대약진 운동이나 인민공사 운동, 그리고 문화 대혁명 등을 정치 사회 운동으로 바라보지만 그것은 지도자 개인의 정치적 열망을 표방한 사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한 국가의 정치 지도자가 갖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얼마만큼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역사적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마오쩌둥은 역사상 유례 없는 사건이었던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놀랍게도 난장판이 되면 될수록 더 신난다'는 시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 대학 및 고등학교 학생들 1천400만명과 홍위병들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여러번의 대형 집회를 개최하고 이들을 고향으로 돌려 보내서 기존의 중장년과 노년층에 대항하라고 사주하였다.

이후의 사건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중국은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한마디로 엉망인 사회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중국판 이상사회의 염원이 분출되었던 대약진 운동과 인민공사 운동의 치명적 결험이 드러나면서 1959년 중국은 '삼년대기근(三年大饑饉)'이 시작된다.

무려 3천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사망하는 대 참사가 벌어지게 된다.

이 숫자는 중국이 20세기 전쟁을 통해서 죽었던 사람들을 훨씬 능가하는 숫자다.

이제와 되돌아보면 지도자의 잘못된 열정에 대중들이 얼마나 손쉽게 놀아날 수 있는가 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같은 일은 과거의 일이라고 그냥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필자가 중국의 사례를 소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오늘날 인류가 눈부신 기술 발전에 힘입어서 생활의 편리함을 누리게 되었고, 다양한 정보원에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시기심과 질투심은 집단심리로서 언제든지 분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 문명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능을 제어하는 능력도 함께 발전하여 왔는가라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그렇다'는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실정이다.

오늘날 개혁 입법의 이름으로 다양한 조치들이 제도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것은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선의로 포장된 정책이 아니다.

모든 정책은 철두철미하게 한국이란 공동체의 발전과 안정성을 위한 법질서의 보호라는 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법질서의 근본은 사유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호의 진로를 보면서 이 부분 저 부분에서 사적 재산권의 보호라는 원칙이 허물어져 내리는 것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게 된다.

'덩샤오핑 평전'을 읽으면서, 그가 근본적인 개혁이나 청산이란 용어를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실용을 중시한 인물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마오쩌둥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역사란 청산과 바로 세우기의 대상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누구든 죽게 마련이고, 권좌에서 물러나게 마련이다.

멀리 보고 공동체의 안위와 발전을 꾀하는 지도자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공병호 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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