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까. 형편은 어려워도 얼마나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고 있었는데…."
온 몸에 깁스를 한 채 병상에 누워있는 딸 은혜(15·중 3)를 바라보는 정윤영(46·달서구 이곡동)씨의 목소리는 한없이 떨렸다.
자신도 군 복무 중 다쳐 3급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정씨의 얼굴에 더욱 깊은 그늘이 드리워진 것은 지난 7일.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귀가하던 은혜가 웃음소리에 뇌성마비 장애자인 자신을 놀린다고 착각해 뒤쫓아온 나모(22)씨를 피하다 4층 빌라 옥상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것.
"아침에만 해도 학교에 다녀오겠다며 밝게 웃으며 집을 나섰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착한 은혜에게 일어났는 지… 죽지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
경찰에 따르면 은혜는 이날 오후 2시 45분쯤 달서구 신당동 ㅅ아파트 인근에서 고함을 치며 쫓아온 나씨를 피해 근처 빌라 옥상까지 달아난 후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다 떨어졌다는 것.
현재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 입원 중인 은혜는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아직 완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간·폐 등 장기 및 치아 손상, 안면·팔 골절 등 떨어질 때 충격으로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 병원 관계자는 "최소한 전치 8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며 회복 여부는 수술해봐야 안다"며 "이 정도 부상이면 살아난 것만도 기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10만원짜리 전셋집에 붙어있는 6평짜리 식당 문을 닫고 딸을 간호하던 어머니 조정옥(36)씨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돕고 집안살림도 곧잘 하던 착한 딸이 다친 것도 억울하지만, 수천만원이나 된다는 치료비 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
은혜네 가족은 사실 병원비는커녕 월세조차 걱정해야할 정도로 막막하기만 하다.
곧 군에 입대할 아들(19)이 올해 고교를 졸업하면서 기초생활수급권자 대상에서 제외돼 정부보조금마저 끊긴 데다 온 가족의 생계가 매달린 식당도 전기세가 수개월째 밀릴 정도로 장사가 안되는 형편이다.
더욱이 구속된 나씨마저 형편이 크게 어려워 보상금 합의도 쉽지않아 어디 한곳 기댈 데조차 없다.
"차라리 제가 저 자리에 누워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말 죽고싶은 마음뿐입니다.
미용사가 돼 엄마아빠 고생을 덜어드리겠다는 착한 딸이 언제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눈만 껌벅거리는 은혜의 손을 부여잡은 정씨와 조씨의 눈가에는 끝내 굵은 이슬이 맺혔다.
한편 은혜처럼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해 생명·신체를 침해받아 자신 또는 유족(遺族)의 생활이 어렵게 된 때는 국가로부터 범죄피해자 구조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구조금액이 너무 적다는 것. 달서경찰서 관계자는 "구조금액이 유족의 경우 1천만원, 장해의 경우 300만~600만원밖에 되지않는다"면서 "은혜의 경우 장해정도가 아직 불분명한 상태인 만큼 병원비 지급을 위해 100만원 이내에서 구조금을 우선 지급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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