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낮게 내려와 있던 하늘은 기어이 비를 뿌렸다. 작은 빗방울은 차창에서 미끄러지고 어느새 낙엽이 된 빨간 단풍이 포도 위에서 뒹굴었다. 나는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물풀이 우거진 작은 섬들이 지나가면 둥근 연잎이 무리 지어 물위에 떠있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강 건너 마을은 비에 젖어 들고 마을 뒤 겹겹이 서 있는 산봉우리는 그 그림자를 물 속에 드리우고 조용히 서 있었다. 산 그림자는 땅위의 산보다 신비롭게 보이며 마음을 끌었다. 낮고 높게 겹친 산봉우리와, 봉우리에 걸린 흐린 구름마저 다 비쳤다. 강물은 일렁이지도 않은 채 산 그림자를 안고 있는 모습이 마치 흐르지도 않은 것처럼 고요해 한 폭의 유화 같았다.
구름을 일컬어 "유연히 퍼지는 것은 군자가 세상에 나가는 기상이요. 비를 만들어 가뭄에서 소생하게 하는 것은 인(仁)이요. 와서는 한 군데만 정착하지 않고 흐르니 미련을 남기지 않아 통(通)이라." 했다. 지금, 하늘에 퍼지는 구름과 가늘게 떨어지는 빗방울 그리고 흐르는 강물을 모두 보고 있으니 구름이 변하는 아름다움을 다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는 차를 세우고 산 그림자만 보았다. 땅에 솟은 산과 구름과 마을은 잊은 채 물에 비친 그림자에 취해 있었다. 산이 없다면 그림자도 없을 것이다. 강물에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금방 부서지고 말 그림자가 몇 만년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산을 마음에서 밀어내었다.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현실보다는 환상이 아름답고, 거짓이 진실을 덮고 있을 때가 많듯이 고요한 산마을은 강물에 비친 그림자의 환상으로 인해 자꾸 밀려나갔다.
신복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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