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대구 학생들의 학력이 서울 강남 못지않다는 기사가 나간 이후 많은 사람들이 기자에게 전화와 e-mail을 보내왔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과연 대구 학생들의 학력이 그만큼 뛰어나냐는 확인이었고, 둘째는 그런데도 왜 수도권 대학들은 강남 학생들을 우대하느냐는 것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기자가 직접 대구와 강남의 고교별 성적 분포를 비교해 봤으니 쉽게 설명해줄 수 있었다. 게다가 기자에겐 지난 몇 년 간의 이 같은 비교 자료가 있어 "그럴 리가 있느냐"라고 물어오는 이들의 부정적인 생각도 어느 정도 바꿔줄 수 있었다.
문제는 두 번째 질문. 이는 질문이라기보다 분노와 허탈감의 표현이어서 답해주기가 만만찮았다. 사실 교육부가 일부 사립대의 강남 우대 고교등급제 적용 사실을 발표한 이후 교육계와 언론 등은 대학들에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지만, 정작 대학들이 왜 그러는지에 관심을 갖고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원인을 찾아내 뿌리뽑지 않으면 언제고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심각한 일이다.
대학들의 강남 선호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기자 역시 수도권 대학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었다. '비슷한 점수라면 강남 학생을 뽑는다'가 아니라 '점수가 좀 모자라도 강남 학생을 뽑는다'는 묵시적 원칙이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학에서 신입생 선발을 담당하는 이들의 내심을 속속들이 알긴 어렵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혹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뻥튀기한 고교 내신을 믿기 어렵다'는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떤 학생을 뽑고 싶으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학 관계자들의 대답을 들으면 어느 정도 심증이 간다. 학력이 좋아야 한다는 점이 물론 대전제이지만 여기에 몇 가지가 덧붙여진다. 가령 이런 식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에서 부모의 관심 속에 삐뚤어진 부분 없이 성장했고, 어릴 때부터 음악이나 미술 등 문화적인 소양을 어느 정도 쌓아왔으며, 여가와 취미를 통해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왜 그러냐고 물으면 한 술 더 뜬다. 가정이 안정되지 못하면 성격이 편협해지며 사회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 쉽고, 문화적 소양이 부족하면 감성이 주도하는 미래의 주역이 되기 힘들고, 성공에 집착해 주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런 기준들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지위에 있는 대학 관계자 자신들의 입맛에 철저히 맞춘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신분 질서가 이미 고착되고 있다는 얘기다.
고교등급제는 일단 대학입시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보고 교육계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면에 숨어 있을지 모를 위험한 이데올로기를 분석해내고 이를 타파하는 노력은 사회 전체의 몫이다. 이를 방치한다면 우려는 사실이 되고, 더욱 왜곡된 형태로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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