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문-수원성 축성 이모저모

입력 2004-10-18 18:29:10

1796년(정조20) 8월 국왕을 비롯해 대신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원성 준공식이 열렸다. 1794년 2월 채제공의 지휘아래 성을 쌓기 시작 2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엄청난 규모의 성을 완성한 것이다.

성 신축공사 기간이 이처럼 짧았던 것과 관련 공사 책임자인 채제공은 "지금까지 성 신축 때 돌을 주로 사용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돌과 벽돌을 섞어 성을 쌓았으며 거중기 등 과학기기를 총동원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기기를 이용할 경우 거의 인력에만 의존할 때보다 노동력과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번에 완공한 수원 성곽은 지금까지 성곽처럼 피난처인 산성과 거주를 위한 읍성이 분리돼 있지 않다. 수원성은 산성을 쌓는 대신 일반주민이 거주하는 읍성에 대대적인 방어시설과 건물을 설치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와 관련해 남인측 일부에서는 수원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수도 천도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곳을 개발함으로써 그동안 강화해온 국왕권을 과시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수원성 축성 이모저모

△공사비=수원성 신축에 동원된 인력은 석수 목수 미장이를 비롯해 기술자가 총 1만 1천820명, 돌덩이 18만 7천600개가 사용됐다. 또 69만 5천 개의 벽돌을 구워 성을 쌓는 데 돌과 함께 썼고, 목재 2만 6천 2백주, 철물 55만 9천근, 숯 6만 9천 2백주, 기와 53만 장이 소용됐다. 이 같은 재원은 금위영과 어영청의 재정 10년 치와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감영의 예비비로 충당했다.

△벽돌사용=이전까지 축성에는 주로 돌을 사용했다. 돌을 캐고 나르고, 알맞게 쪼개고 쌓아올리느라 공사기간이 길었고 노동력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 수원성 신축에는 박제가 등 북경을 다녀온 실학자들의 의견을 수용, 중국 성곽축성의 주요재료인 벽돌을 사용해 공기단축은 물론이고 노동력도 크게 줄였다.

△노동력=수원성 축조에는 전국의 빈농을 고용했다. 공사에 동원된 역부에게는 매일 2전 5푼씩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사 도중 재정상의 문제로 역부를 추가고용하지 못하자 한때 일반백성을 징발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국왕이 민폐를 이유로 강제징발을 허락하지 않았다.

△수원 키우기=수원성의 완공과 함께 독자적인 도시로 키우기 위한 여러 대책들이 강구되고 있다. 수원에서 장사할 상인을 모집하고 만석보를 비롯한 여러 저수지를 건설해 농토를 조성했다. 한편 조정에서는 상인들이 이익만 챙기고 자본을 빼낼 것을 우려해 '반드시 성내에 집을 짓고 살아할 할 뿐 아니라 자손대대로 살도록 한다'는 몇 가지 제한조치도 덧붙이고 있다.

△거중기=정약용이 만들었다. 거중기를 이용하면 돌과 벽돌, 통나무 등을 들어올리는 작업의 능률을 4배 이상 높일 수 있다. 거중기는 밧줄을 여러 개 도르래에 걸고 양쪽 끝에 있는 큰 도르래를 거쳐서 작은 바퀴의 굴대에 감기도록 돼 있다. 사람들이 좌우에서 바퀴를 돌려 무거운 짐을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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