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함께

입력 2004-10-12 09:12:29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해가 질 때 지상의 먼지들이 붉게 타오르는 건

아직 뜨거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먼지들의 혈맥 속에 진한 피가 돌고 있기 때문이다

소멸을 위한 춤이 아니다

무거운 형체를 꺼내놓고 잠시

한때의 가벼움을 향하여 제사를 올리는 것

환생의 사원에 들러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 고 믿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종교를 나는 믿는다

배용제 '노을'

저녁 노을이 흔적 없이 사라진 거기, 자욱하게 밀려오는 어둠 앞에서 당신은 자주 허기를 느낀다.

섬돌 밑 귀뚜라미 또한 머지않아 흔적 없이 자신의 한 생을 마감할 것이다.

우리에게 허여(許與)된 삶의 길이란 얼마나 조금인가,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예술도 종교도 옹기종기 매달린 솔방울들의 꿈도 허기의 산물이다.

소멸의 징표인 노을 속에 환생의 사원을 짓고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 고 믿는 시인의 노래 또한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