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클릭-동요탄생 80년

입력 2004-10-11 09:07:06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야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 많다.

동요도 그중 하나다.

어린이들은 어서 자라 어른이 되기를 소망하지만, 정작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동심과 함께 했던 동요 역시 나이가 들어서야 그 순수한 맛을 알 수 있게 된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올해는 국내 최초의 창작동요 '반달'(윤극영 작사·곡)이 탄생한 지 80년 되는 해이다.

'반달'은 동요이긴 해도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겨레의 아픈 마음을 달래고 겨레에 희망을 주며 80년 동안 민족과 애환을 함께한 겨레의 노래다.

◇겨레와 함께 해온 동요 80년

'반달'의 탄생 배경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어린이 문화운동가이자 동요작곡가인 윤극영 선생이 어렸을 때 시집간 누나는 잘 살았으나 한일 합방 이후 시댁이 몰락하면서 갖은 고생을 겪다 서른 여섯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이 소식을 접한 청년 윤극영이 북받쳐 오는 슬픔을 가슴에 안고 바라본 하늘에는 낮달이 떠 있었다.

넓은 바다에 쪽배처럼 떠 있는 반달은 윤극영에게 나라 잃은 동포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반달'은 이처럼 슬픈 사연을 안고 태어났지만,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슬픔 속 희망을 노래했다.

'반달'이 태어난 1924년 윤극영은 방정환, 박태준, 윤석중 선생 등과 함께 어린이 문화운동 단체를 만들고 동요 창작을 시작해 '고드름', '설' 등을 탄생시키며 창작 동요 시대를 연다.

또한 대구가 낳은 천재작곡가 박태준 선생도 '반달'에 버금가는 국민 동요 '오빠생각'을 1925년에 발표한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당대 최고의 작곡가 박태준 선생은 '가을바람', '가을' 등 주옥 같은 동요 76곡을 작곡, 동요 발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당시 일본 창가 대신에 박태준 선생의 동요가 학교에서 많이 불려지자, 조선총독부는 당황한 나머지 아이들이 동요를 못부르도록 교사들을 닥달했다.

동요는 어린이만의 노래가 아니다.

동요는 겨레와 함께 숨쉬어왔으며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왔다.

1929년 홍난파 선생이 발표한 '고향의 봄'은 해외동포들에게 애국가보다 더 많이 불려지는 민족 노래로 승화됐다.

해방 후 새나라 건설의 의지는 '새나라의 어린이'(윤석중 작사·김대현 작곡)에, 6·25 전쟁의 비극은 '과꽃'(어효선 작사·권길상 작곡)에 녹아들었다.

◇동요 부르지 않는 아이들

그러나 정작 요즘 아이들은 동요를 잘 부르지 않는다.

어린이들이 컴퓨터·비디오 게임과 인터넷, TV 드라마, 힙합 등 자극적인 문화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면서 동요는 음악수업 시간에만 부르는 노래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주현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원은 "친구들은 가요만 좋아할 뿐 동요가 시시하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러보면 동요 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방송국이 주최하는 동요대회도 자취를 감췄다.

몇 해 전만 해도 대구MBC와 KBS대구방송총국은 동요부르기 대회를 개최했으나 시청률을 이유로 슬그머니 폐지해 버렸다.

또한 두 방송사가 어린이 합창단을 몇년 새 잇따라 해체하면서, 어린이 합창단이 밝게 웃으며 해맑은 소리로 동요를 부르던 모습도 볼 수 없게 됐다.

현재 대구에서는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동부소년소녀합창단, 뿌에리깐토레스, 대구CBS소년소녀합창단, 필그림어린이합창단 등 전문 어린이합창단이 활동하고 있다.

대구에 있는 200여개 초등학교 중 어린이 합창단을 운영하는 학교는 150여개 정도. 수적으로 적지 않지만 여건은 열악한 편이다.

교육대학교에서 음악심화 과정을 수료한 초교 교사가 대부분 합창단을 지도하고는 있는데 전문적으로 성악 또는 합창을 공부한 교사는 많지 않다.

◇음악인들 동요에 더 관심 가져야

지난달 21일 대구문예회관 대극장에서는 한국창작동요 8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음악회가 열렸다.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연주회 '푸른하늘 은하수'가 그것이었는데 이날 연주회에서는 '반달', '오빠생각' 등 대표적인 동요들을 비롯해 '철도가', '학도가' 등 개화기 창가와 요즘 작곡된 동요들이 불려졌다.

이 연주회를 보았다는 한 관객(ID : lkmdkh)은 대구문예회관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기회여서 감회가 새로웠다.

아름다운 동요들이 대중문화에 휩쓸리며 아이들의 입에서 멀어져서 안타깝다.

소중한 우리 동요들이 많이 불려지고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올렸다.

이재준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 상임지휘자는 "동요가 불려지더라도 옛날 노래 편중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데, 이는 기성 작곡가들이 동요를 낮춰 본 나머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아마추어 작곡가들이 동요 작곡에 더 열성적이며 풍부한 감성의 곡들을 짓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최재습 대구시교육청 장학관(초등장학담당)은 "예능 교육 활성화를 꾀하고 음악을 통한 정서 순화·인성 교육을 위해 내년도 대구시교육청 중점 시책 사업으로 초·중·고교 합창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해용기자 kimhy@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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