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 업

입력 2004-10-07 08:54:25

청춘의 성은 접시 속의 폭풍이다. 혼자만의 격정이란 얘기다. '금서'에서 본 금발 여인의 여체(또는 남체)만 떠올려도 피가 한 곳으로 쏠려 혼자 곤욕을 치르는 시기다. 밤마다 꿈에는 환상 속의 여인이 등장하고, 그 짜릿한 손길에 절로 정기를 펑펑 쏟아내는 '몽정기'의 계절이다.

용감한 아이들은 속칭 '자갈마당'을 가 봤다고 무용담을 늘어놓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구라'가 100% 였을 그 얘기를 혼을 내놓고 듣곤 했다. 그래서 상상 속으로나마 '청소년출입금지' 구역의 그 풍경을 그렸고, 헤프다던 여자애의 자취방도 그려보곤 했다.

거뭇거뭇 자라는 음모의 개수만큼이나 성에 대한 환상과 궁금증이 컸던 그 때였다. 한국영화 '몽정기'는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의 성에 대한 성장영화다. 선생님의 치마 속이 궁금하고, 근질거리는 육신을 달래기 위해 손이 바쁜 아이들의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어느 시기건 '몽정기'와 같은 영화가 있었다. '포키스', '프라이빗 스쿨', '팬티 속의 개미', '어메리칸 파이' '색즉시공'등이 그런 영화일게다. 필자에겐 '그로잉업'(1983)이란 영화가 그랬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과 독일 합작영화다. 어떤 연유로 한국에서도 개봉됐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꽤 흥행에 성공했고, 유사한 아류작들이 가짜 속편으로 둔갑해 개봉되기도 했다.

요즘에 비하면 이 영화의 스토리는 상당히 진부하고, 소박하다. 내성적인 소년 벤지와 꽃미남 바람둥이 바비, 그리고 뚱보 휴이. 그들은 오락장에서 꼬신 여자애들과 공짜로 영화관에 갔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이웃집 유부녀와 침대에서 뒹굴다가 남편에게 두들겨맞기도 하면서 성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간다. 매춘굴에 갔다가 성병에 걸려 애를 먹기도 한다.

그들 사이에 니키라는 여자애가 나타난다. 피비 케이츠를 연상시키는 예쁜 애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그 애는 꽃미남 바람둥이 바비하고 사귄다. 좋아하면서도 좋아한다는 소리도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는 벤지. 바람둥이가 다 그러하듯이, 바비는 니키와 관계를 맺고 임신을 하자 그녀를 차 버린다.

벤지는 버려진 니키의 낙태수술을 도와주고, 정성껏 뒷바라지 한다. 그녀와 함께 있는 벤지는 가장 큰 행복감을 맞본다. 그녀와 파티장을 찾은 벤지. 그러나 니키가 바비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보게 된다. 둘은 예전처럼 다정하다. 허리를 껴안은 바비와 이를 기꺼이 맞이하는 니키. 벤지를 그들을 뒤로 하고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린다.

집으로 가는 벤지의 쓸쓸한 표정이 무척 가슴을 아프게 한 영화였다.'그로잉업'은 10대 청소년의 원초적인 성과 이를 통해 크는 성장영화다.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서 그 때 등장한 배우들의 행적이 묘연한 가운데, 영화에 대한 잔상은 어느 영화 못지않게 컸던 영화다.

아이들의 성 체험을 겪으면서 등장하는 여체가 스크린에 출렁이지만, 요즘 영화의 노출이나 섹시 유머의 수위와 비교하면 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짜릿했던 것은 섹스를 그리워하는 소녀의 욕정을 엿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영화 '색즉시공'에서 하지원이 비슷하다고 할까. 짝사랑하는 임창정을 두고 하지원은 바람둥이 남자애의 아이를 갖게 된다. 임창정은 그녀의 애를 받고 산후조리도 도와준다. 그리고 둘은 사랑을 맺는다.

'그로잉업'의 비키도 짝사랑하는 벤지를 두고 바람둥이 바비와 '놀아난다'. 그러나 니키는 바비와 재결합하면서 벤지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열패감을 안겨준다. 벤지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섹스였고, 벤지의 시선은 관객들에게 그대로 투영됐다.

'그로잉업'은 50년대와 60년대 미국 팝음악을 이야기 사이에 절묘하게 배치해 더욱 매력적이었다. 특히 벤지가 니키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 나온 브라이언 하일랜드의 'Sealed with a kiss'는 압권이었다.

"여자애들은 바람둥이를 좋아한다니까. 나는 그래야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애들이 한마디씩 뱉었다. 필자도 속으로 그랬다. 그러나 그러지를 못했으니, 이를 어쩌랴. 그것도 타고나야 되는 것을…

에로킹(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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