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함께

입력 2004-10-06 16:52:37

바람 불고 어둠 내려서 길 잃었네

나무야, 너는 굳센 뿌리로 대지를 움켜쥐고

팔 들어 별을 헤아리겠지만, 나는

네 뿌리 밑으로 노래의 씨를 묻는다네

길 잃은 슬픔 너무도 오래 사랑하여

슬픔이 한 꽃송이로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나는

외로운 시간 너무도 오래 사랑하여

슬픔이 한 꽃송이로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나는

나무야, 네 뿌리 밑으로 별의 푸른 밝음을 묻는다네

영영 결별 없는 사랑이 되기 위해

언 땅 위에서 아직도 집 짓지 못한 벌레의 집이 되고

동행 없어 외마디 비명으로 죽어 가는 바람의 친구가 되고

나는 이제 예감의 숲에

아프고 환한 노래의 씨를 묻는다네

배한봉 '나뭇잎의 말'

떨어지는 나뭇잎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우리는 할 수 없이, 가이없는 이별과 정처 없는 헤맴과 생의 덧없음을 본다. 햇살을 모아 꽃을 피우던 꿈도, 바람을 불러들여 제 몸을 부풀리던 오만도, 하늘까지 타오르던 초록의 기상도 떨어진 나뭇잎에는 이제 없다. 시인은 떨어진 나뭇잎으로부터 '나는 이제 예감의 숲에/아프고 환한 노래의 씨를 묻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대가 떨어진 나뭇잎이라면 무슨 말하겠는가? 가을이 묻고 있다.

강현국(시인'대구교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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