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프랑스 기자가 주은래 중국 수상에게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주은래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직 20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평가를 하느냐." 100년 전 일, 아니 10여년 전 일을 놓고도 열전을 벌이고 있는 우리와 비교할 때 중국인은 확실히 '만만디(慢慢的-느리다)'인가.
중국에서 이른 아침 공원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쿵푸를 즐긴다.
절도 있고 빠르고 구호까지 덧붙이는 우리의 태권도와 달리 느리기가 말로 다 할 수 없다.
식당에 가보면 요리를 내오며 하는 말이 "만만츠(慢慢吹-천천히 드세요)", 헤어질 때 하는 인사도 "만쩌우(慢走-천천히 가세요)"다.
그러나 이번에 중국을 돌아보니 경제를 일으키는 일에서는 중국인들이 조금도 느리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빨라 보는 사람들이 숨이 찰 지경이었다.
우선 수도 북경부터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15년 전 처음 봤을 때 자전거 홍수를 이루던 천안문 거리는 이제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로 꽉 차 있었다.
고층빌딩도 엄청나게 늘어나 어디가 어디인지 기억해 내기가 어려웠다.
북경만이 아니라 넓은 중국 땅 전체에 '천지를 뒤엎는 변화'(인민일보 2004. 8. 23)의 강풍이 불고 있었다.
각종 통계들만 봐도 그 강풍의 속도를 알 수 있다.
1978년 개혁-개방을 주창한 이후 25년간 중국은 연 9.4%라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세계최고다.
이에 따라 79년 3천624억 위안에 불과하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1조6천694억 위안(약 1조4천93억 달러)으로 솟구쳐 올랐다.
물론 국민들의 생활형편도 크게 나아졌다.
개방초기인 80년대의 경우 중국인들의 3대 필수품을 일컫는 이른바 싼다젠(三大件)이 손목시계, 재봉틀, 자전거였는데 이것이 90년대에는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으로 바뀌더니 지금은 자동차, 주택, 컴퓨터로 변해가고 있다.
중국의 이런 성장페이스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금년 4월 IMF는 중국이 앞으로 2020년까지 연평균 7.6%의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번 여행에서 중국 경제발전의 싱크탱크인 '국무원 발전연구 센터' 책임을 맡고 있는 왕몽규(王夢奎· 66) 북경대 교수를 만날 기회가 있어 이를 확인해 보니 "향후 20년 동안은 지금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답이었다.
불과 한 세기 전 서방 여러 나라들의 침략으로 수도가 함락되고 영토가 찢겨나가는 등의 수모를 겪던 중국, 공산중국으로 통일되고 나서도 모택동의 인민대약진 운동 실패에다 문화대혁명의 광란까지 겹쳐 피폐만 더해가던 중국, 그 중국이 어떻게 해서 이처럼 눈부신 발전궤도로 한달음에 오르게 되었을까. 이것을 생각하면 지도자 한 사람의 판단력과 리더십이 국가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되는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사람의 지도자는 물론 등소평이다.
1976년 모택동이 사망한 이후 복권된 등소평은 77년 문화 대혁명의 종결을 선언하고 78년 서방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조치를 취했다.
개혁-개방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의견이 있었지만 "똥파리가 무서워 창문을 못 여느냐" 면서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되라는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했다.
중국을 종래의 교조적 사회주의 노선에서 일탈시킨 이 슬로건이 중국인들의 일할 의욕을 자극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등소평이 택한 또 하나의 주목할 리더십은 과감한 포용정책이었다.
그는 문화대혁명이 "나라 발전을 20년 후퇴시켰다"고 혹평하면서도 이를 촉발시킨 모택동에 대해서는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것이 많다"고 옹호했다.
그래서 자기가 주창하는 국가발전 노력에 모택동 지지파도 기꺼이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문화 대혁명 때 10,20대 홍위병으로 참가해 기성세대들에게 무자비한 테러를 가하던 사람들에게도 이후의 활동에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금 40대가 되어 당과 정부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북경 천안문에 여전히 걸려 있는 모택동의 초상화는 등소평이 취한 이런 리더십을 표상하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 것이다.
등소평은 1992년 경제특구인 광동성을 방문 했을 때 이런 말을 했었다.
"20년 안에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따라잡을 수 있게끔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
등소평이 말한 20년이 8년 후로 다가온다.
그가 말한 따라잡기를 우리가 당하지 않으려면 그보다도 판단력과 리더십이 좀더 뛰어난 지도자가 우리에게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최 재 욱 (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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