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지키기 우리가 한몫" 고문화연구회

입력 2004-10-02 16:59:22

"잊혀지는 우리의 문화 유산을 제대로 알고, 지키는 데 앞장서자."

'고문화연구회'(회장 이순철)는 지난 1980년 10월 포스코 직원 7명이 모여 '포항제철 고문화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발족했다.

한마디로 '우리 문화재를 제대로 알자'며 만든 사내 동호회였다.

발족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순철 회장(1999년 포스코 홍보이사보에서 퇴직)은 "당시만 해도 포스코 직원들 모두 앞뒤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산업의 쌀'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오직 철(鐵)만 생각하던 시기였다"며 "하지만 너무 딱딱한 직장 분위기는 자신뿐만 아니라 회사로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생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문화재였다"고 발족 취지를 설명했다.

고문화연구회는 창립 후 지금까지 한 차례도 쉬지 않고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정기답사를 하고 있다.

벌써 수백회가 넘는다.

또 매년 1, 2차례 문화재 전문가를 초빙, '문화재 해설의 밤' 행사를 개최하는가 하면 주요 문화재를 발굴했을 경우는 관련 자료집도 펴내고 있다.

이와 함께 경주의 문화재 전문가인 고(故) 윤경렬 옹을 비롯해 문화재 전문가를 전문위원으로 위촉, 착실히 실력을 쌓고 있다.

특히 '문화재 해설의 밤' 에는 회원 및 가족은 물론 일반시민들도 참석,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우리문화재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고문화연구회가 제일 먼저 고문화계에서 관심을 끈 것은 창립 2년 뒤인 지난 1982년. 당시 영일군 연일읍 호동리 고현산성에서 3~9세기로 추정되는 민묘 고분군을 찾아냈다.

하지만 민묘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도굴꾼들에 의해 모두 도굴된 뒤였다.

회원들은 이같이 문화재가 훼손되고 있는 현장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그 뒤로 고문화연구회는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지역 인사들을 대상으로 회원수를 늘려나가는 한편 답사지역도 포항·경주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넓혀 나갔다.

발족 20년이 넘어서면서 회원들은 이제 문화재 보는 눈(수준) 만큼은 문화재 전문가 못지 않는 수준급이 되었다.

또 정회원수(대부분 한국고고학회 회원임)도 50여명에 이를 만큼 전국 규모의 문화재 연구단체가 됐다.

회원들은 포스코 직원, 교사, 주부 등 다양하다.

고문화연구회는 여름 및 겨울 방학이 되면 1박2일로 원거리 가족동반 답사를 하면서 문화재 현장 공부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회원 가족들은 방학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회장 초청 '고구려 유적에 관한 해설'(1997년), 북간도 문화재 해설(2004), 중국 지안(集安) 유적답사(2004) 등 굵직한 행사 때는 회원들은 물론 가족들도 함께 동참해 문화재에 대해 서로 공부하고 토론도 벌인다.

고문화연구회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지난 1989년부터 94년까지 8회에 걸쳐 포항시 북구 칠포리 해안가에 산재한 청동기 시대 고인돌 암각화를 발견한 것.

당시 칠포리 고인돌 암각화 발견은 고고학계는 물론 언론에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경주박물관이 이들 고인돌을 분석한 결과 남방식 지석묘로 밝혀졌다.

측면 모서리에 음각된 그림은 마제석촉(돌 화살촉)과 인면(人面) 형상으로 밝혀졌으며 청동기 시대 무속신앙과 조각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임이 확인된 것.

회원들은 칠포리 암각화 발견을 계기로 한국민속학회와 공동으로 '한국의 암각화'라는 주제로 2차례나 세미나를 열어 고문화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함께 '칠포마을 바위그림'이란 책을 2천권 발행, 지역내 학교와 도서관 등에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이 책의 글은 이하우(47·영일고 교사) 회원이, 사진은 한형철(46·영일고 교사) 회원이 맡았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러시아 아카데미 교수이자 고고학계의 세계적 전문가인 블라자미르 D 꾸바레프 박사를 초청, 포항공대 정보통신연구소에서 '2003 문화재 해설의 밤' 행사를 가졌다.

국내 고문화계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한 이 자리에서 칠포리 암각화의 학술적 가치가 또다시 집중 부각됐다.

꾸바레프 교수는 칠포리 암각화 현장을 둘러본 뒤 "칠포리 암각화는 중앙아시아의 고원지대인 알타이 지방에 산재해 있는 4천년 전 암각화와 비슷한 것으로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예술 및 정신세계를 잘 나타내주는 귀중한 문화재"라고 설명했다.

고문화연구회는 고대의 제천의식(祭天儀式)을 오늘에 되살린다는 마음으로 해마다 '고천제(告天祭)'를 지내고 있다.

이때는 선조들의 정신을 기리는 한편 나라의 안위와 고문화연구회의 무사 발전도 빈다.

한편 고문화연구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중의 하나가 회원들 모두 자신의 '호(號)'를 갖고 있다는 것.

회원이 되려면 먼저 준회원으로 1년 동안 열심히 답사활동에 참여해 어느 정도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런 후 전 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사람의 인품과 특징에 맞는 호를 2, 3개 짓고 회장이 그 중 하나를 선택, 답사지에서 걸쭉한 막걸리 파티와 함께 호 증정식을 갖는다.

'벽야' '혜수' '연암' '구강' '백강' '중악' '일석' '하우' 등 상대의 호를 부르다 보면 직장내 서열이나 나이 등 일상적 질서에서 벗어나 인격으로 대하게 돼 서로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 이 때문에 고문화연구회는 신입회원을 엄선해서 매년 서너명밖에 뽑지 않는다.

일단 회원이 되면 회원들은 큰 집, 작은 집 이상으로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지내기 때문에 마치 우리의 전통적 대가족이 된 느낌을 받는다.

즉 사회가 복잡하고 가치관 혼동이 심해질수록 거울을 보듯 과거와 현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알고 삶의 좌표를 올바르게 설정하는 것이다.

한편 회원들은 각종 답사나 행사 때 드는 비용을 회원들의 호주머니에서 갹출한다.

'보람'과 '사명감'이 있기에 한 사람도 불평이 없다.

이 회장은 "우리 민족이 어떤 문화를 형성해 왔는가를 연구하고, 이를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 우리문화의 주체성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신라인의 미소'가 곧 고문화연구회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포항·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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