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고향 풍경1

입력 2004-10-01 09:01:18

김규환 지음/하이미디어 펴냄

'겉봉에는 대파가 숭숭 썰려 있고 한우 한 마리도 그려져 있었다.

그 뿐이던가. 노란 생달걀 하나가 떡하니 있다.

뽀글뽀글 면발과 라면 국물, 그리고 위에 얹혀 있던 쇠고기, 달걀, 대파는 어린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군침이 돌았다.

'

어린 시절 처음 접했던 라면. 누군들 그 맛과 생김새에 빠지지 않았을까. "언제 놉(인부) 얻을 때 끓여주마"던 엄마의 약속에 라면이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동네 구판장까지 한 걸음에 내달리던 소년. 하지만 막상 '허벌나게' 맛있다던 라면이 익자 소년을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겉봉의 사진에 있던 먹음직스러운 쇠고기와 대파는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 "거기다 달걀은 왜 또 없는 거지라우? 봉지에는 다 들어있다고 사진이 있는디. 썩을 놈들 우리 것만 쏙 빼 놓았는갑소."

세상은 눈부신 속도로 변한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덕분에 그리 멀지 않은 시절도 어느덧 까마득한 옛 이야기가 돼버렸다.

'잃어버린 고향 풍경1'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로 떠나는 행복한 추억 여행이다.

전남 화순 백아산 산골마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상사들이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한 폭의 풍경화처럼 생생하게 담겨있다.

불과 30대 후반의 '젊은' 저자는 유독 개발이 늦었던 오지 마을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 옛날 고향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자장 소스가 먼저 나오자 면과 따로 먹는 것인 줄 알고 자장 소스만 후루룩 먹어치운 육남이 이야기, 콘돔으로 풍선 불어 축구를 하던 이야기, 배터리로 물고기 잡다 감전돼 죽을 뻔한 이야기, 백열등에 필름 열고 비추어 보며 "왜 안 찍혔지?"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야기 등 시골 아이들의 순박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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