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明治) 유신의 산실은 200년이 넘도록 중앙정부인 바쿠후(幕府)의 홀대를 받던 사쓰마(薩摩)번(藩)과 초슈(長州)번(藩)이었다. 일본 열도의 서쪽 외곽에 위치한 사쓰마번과 초슈번의 현재 지명은 가고시마(鹿兒島)현(縣)과 야마구치(山口)현(縣).
이들 두 지역은 오랜 세월 대립과 반목을 거듭해 온 앙숙관계였다. 지역민들의 정서도 사뭇 달랐고, 지역 생산물조차 상대적이었다. 쌀과 소금, 소총 등이 한쪽에서 남아돌면 한쪽에선 모라자는 형편이었다.
견원지간이던 이 두 지역을 손잡게 한 인물은 도사(土佐)번(지금의 高知縣) 출신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였다. 그는 사쓰마와 초슈의 장점만 살리면 바쿠후에도 대항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원동력이었던 샷초(薩長)동맹은 이같이 시대상황을 통찰하고 있던 사카모토의 추진력과 협상력, 그리고 양 지역 지도자의 열린 생각 때문에 가능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 지도자가 있었기에 일본이 구미 열강의 식민지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의 대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교육시장 개방 예고와 신입생 가뭄, 재정난, 청년실업 등은 지역대의 위기를 웅변하고 있다. 꼭히 비교하자면 외세의 침탈과 중앙정부의 박대라는 이중고를 앓고 있던 사쓰마와 초슈번의 형국과 다를 게 무엇인가.
위기의 시대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존폐의 기로에 놓인 대학을 회생시킬 수 있는 일차적인 열쇠는 대학의 총장이 가지고 있다. 사실 요즘들어 우리나라 대학의 총장들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의 권위적인 리더십이 참여와 봉사의 리더십으로 바뀌고 있기도 하다. 총장들은 대학 특성화와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한편 발전기금 조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어윤대 고려대 총장은 대학의 글로벌화를 이끌고 있으며, 홍승용 인하대 총장은 세계의 대학들과 컨소시엄 구성에 진력하고 있다. 박명수 중앙대 총장은 320억여 원의 발전기금을 모았고, 신방웅 충북대 총장은 NURI 사업 선정과 RRC 연구실적 전국 1위를 이뤄냈다. 조무제 경상대 총장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창원대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대 총장들도 저마다 CEO 총장을 자임하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고, 더러는 대학의 특성화와 구조조정을 추진해 일부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의 지역대가 공멸이 아닌 상생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침체국면을 전환시킬 극적인 처방이 필요할 것 같다.
경쟁관계였던 사쓰마와 초슈가 동맹을 맺어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듯이 지역대도 필요에 따라서는 단과대학과 학과를 과감하게 빅딜하며 대학을 특성화해 경쟁력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최근 교육인적자원부의 구조개혁 방안에서도 드러났듯이 같은 재단이나 관련 대학과의 전략적 통합이나 협력관계 구축은 대학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
지방대의 위기를 보며, 사카모토와 같은 대학 지도자의 리더십과 사쓰마, 초슈번 같은 대학의 결단을 기대해 본다. 총장의 역량에 따라 대학의 운명이 좌우되고 지역의 명암이 엇갈리는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조향래 사회2부 차장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