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달구벌의 옛 친구를 그리워하며

입력 2004-09-22 09:08:21

달구벌에는 동시대의 아픔을 이겨 나가기 위해 함께 어깨 걸고 살았던 한 친구가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서슬퍼런 권위주의 군사정권 하에 함부로 말하고 글쓰는 것조차 제한될 때였다.

1986년에 '개헌,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대구YMCA 시민논단이 열렸을 때, 그는 다른 변호사 등과 함께 공동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30대 초반 약관의 헌법학자였던 그는 소신에 찬 언변으로 민주화를 염원하는 청중의 가슴에 호헌철폐 직선개헌의 불을 당겼다.

그 전후하여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교육민주화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서울, 부산, 광주 등에 비해 운동의 인적기반, 특히 지식인의 사회참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당시의 대구지역 분위기에서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대학을 포함하여 지역 내의 뜻있는 소장 인문사회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지방사회연구회'(현 대구사회연구소)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한국사회변혁과 지역사회운동의 이론적 작업에 적극 참여하였다.

1990년대 중반들어 이른 바 시민운동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이론화 작업보다 직접 시민사회운동에 뛰어 들어 '새대구경북시민회의'를 만들었으며 나도 그 일원으로 함께 뛰었다.

그러다 어느 목사님이 주례하는 자리에서 의기투합하여 40대 중반이 넘어선 나이에 친구가 되었다.

부족할 때 위로하고 서로의 일터의 어려움과 고민에 대해 걱정해주었다.

그는 법학자로서 자신의 이론과 신념을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데 촛점을 놓치지 않았다.

학문적으로 자신의 주요 관심 영역이었던 교육법을 운동 현장에서 실현코자 자신이 살고 있던 거주지를 중심으로 '남부 새교육시민모임'을 조직하였다.

또한 선거법을 제대로 지키기 위한 바른 선거시민운동을 위해 자신의 주거지에서 '서구바른선거시민모임'(현 '주민과 선거')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현장의 일을 위해 그는 바닥에서 뜻있는 회원과 주민을 만나고 삶의 무게를 싣고 그들과 하나로 호흡하는 일에 혼신을 바쳤다.

2년여 전 숨을 거두기까지 그는 지역 시민운동이 요구하는 영역에서 옳다고 판단하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뛰었다.

중앙초등학교 녹색공간화 운동, 총선연대, 언론개혁 시민운동 등 주요한 시민운동의 이슈에는 언제나 그가 중심에 자리하였다.

그러나 시민사회 영역이 아무리 활성화된다 하더라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의 민주화가 그에게는 늘 커다란 짐이 되어 고뇌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학자로서의 자기부문에 대한 탐구와 그 학문적 성과에 대한 사명감 또한 적지 않았다.

그는 화려한 학력에 진작 기득권에 안주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엘리트 중산층으로서 여유있는 삶을 향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헌신한 경력과 지도력으로 인해 여러 분야에서 정치적 진출에 관한 유혹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강직한 성품은 순수한 시민사회운동의 원칙과 정도를 향하여 일관되게 걷게 하였다.

또한 그는 생각이 곧고 의리있는 사람을 좋아했기에 어려운 일, 좋은 일을 그들과 함께 나눌 때 술을 곁들였다.

때로 사람들은 그의 술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술로 인해 흐트러지지 않으려 한 그의 삶의 자세를 기억하고 있다.

대구를 포함한 한국의 시민사회는 그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온 삶을 던져 우리 시대에 부여된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겹게 끌고 가려다가 힘에 부쳐 쓰려졌다.

시민들이 좀 더 힘이 되어 주었다면. 나누어 가졌다면…. 그러나 그는 벅찬 짐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생명을 보았을 것임이라. 그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 줄 친구를 찾고 있다.

동지를 찾고 있다.

어쩌면 그는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하늘을 편안케 하는 샬롬의 세계, 평화의 세상을 희구했을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보았을 새로운 생명, 그 평화의 세상, 대동세상을 기리며.

그의 2주기 때 달구벌의 어느 한 선배시인은 추모비 서문 중 그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역사의 질곡을 풀고 해방의 움을 틔우려 하였다"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자유, 평화의 고귀한 운동적 유산을 지닌 빛고을 광주에서 1년여 살아 온 나는 광주를 좋아했던 달구벌의 옛 친구를 아직도 그리워한다.이상점·광주 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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