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길의 베트남여행기-(4)붕따우의 추억

입력 2004-09-22 09:08:21

도시의 밤은 늘 흥청거린다.

호치민의 밤거리는 스트레오 스피커의 굉음과 물결치는 오토바이의 광란으로 시작되고, 밤을 기다리기나 한듯 카페를 가득 메운 수많은 젊은이들로 밤의 유흥이 깊어간다.

그러나 호치민시의 밤거리는 독특하다.

300년 역사의 전통과 문화를 적당히 간직하면서도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유혹의 거리가 따로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낮과 밤이 달라지는 도시 풍경에 여행의 피로와 긴장감을 잊은 채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 해를 넘길 수 있음은 다행스럽기만 하다.

더운 나라 베트남을 여러 차례 배낭여행을 즐기는 이유가 이 개성 있는 변덕에 있음을 누가 알겠는가?

우리 일행은 배낭여행으로 지친 객고도 풀 겸 호치민 근교도시 휴양지인 붕따우(Vung Tau)로 향했다.

쾌속정은 출렁이는 사이공강의 황토 빛 물살을 가르면서 쏜살같이 빠져 나와 늦은 오후에 붕따우 까우다선착장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일전에 한번 와 본 곳이기도 해서 긴장감은 덜했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행을 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더욱이 이번 배낭여행에는 대구에서 함께한 일행 두 사람이 생겨 안도감을 더해 주었다.

여행 일정이 10일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베트남에 대한 흥미로움이 고조되어 일정을 두 배로 연장하게 되었다.

붕따우는 해변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주변으로는 많은 사원과 거대한 예수상 등 종교 유적이 여행객을 심심찮게 하는 곳이다.

밤이 되면 휴양 도시의 면모가 확연하다.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들은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할 뿐만 아니라 노천카페의 소란에다 여인들의 호객행위 등으로 호기심마저 발동한다.

말 그대로 섹스관광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도시다.

해질 무렵 일행과 함께 해변에서 사진촬영을 할 때 일이다.

촬영에 여념이 없는데 화려한 옷차림의 여인이 나타나 오토바이에 몸을 실은 채 말을 건넨다.

도무지 한마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몸짓, 손짓이지만 은근한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일행 중 소위 자타가 공인하는 한 신사가 싱겁게 여인네에게 농을 건다.

그 속내도 모르고 여인네는 자신의 오토바이 뒷자리를 가리키며 좋은 곳에 안내하겠다고 애교 띤 몸짓으로 유혹을 한다.

일행은 쓴 웃음으로 정중하게 거절하고 촬영에 집중했다.

그러나 어둠이 깔릴 때까지 막무가내로 숨 돌릴 여유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여인네의 작업은 계속된다.

사냥이 어려워지니까 그녀는 후덕해보이는 일행 한 사람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러저리 피해보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붙었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니 또 모습을 드러냈다.

카페까지 따라와 접대부 행세를 하기도 한다.

잠시 후 응원차 젊은 아가씨까지 동원한다.

숙소 정문까지 따라와 일행 중 한사람을 호위하듯 하면서 유혹의 손길을 멈추질 않았다.

숙소로 여러 차례의 전화벨이 울렸지만 끝내 퉁명스런 경상도 사투리 한마디로 여인네의 유혹은 끝이 나고야 말았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붕따우 여인네들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다.

전 계명대교수·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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