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이제 곧 추석

입력 2004-09-21 09:03:54

한낮의 볕은 뜨거우나 오슬오슬 몰려오는 가을의 걸음은 빠르기만 하다.

추석이 벌써 동구 밖까지 와서 마을을 기웃거리는지 돌담 위에서 여무는 박덩이가 보름달만큼 커졌다.

이웃 할머니의 거동이 며칠 재다 싶었더니 추석에 찾아올 자식들에게 나누어 줄 양념거리와 푸성귀를 갈무리하느라 그렇듯 바삐 움직였나보다.

앞니가 빠진 이를 드러내고 함박 웃는 모습이 어딘지 우울한 기색을 떨치지 못한 듯하다.

자식 기다리는 마음이야 기쁘겠지만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농사를 풍년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예년 같으면 벌써 벼이삭이 제 무게를 못 이겨 고개를 제법 숙이고 있으련만 올해는 큰기침하며 느릿느릿 팔자 걸음 걷는 선비의 목처럼 뻣뻣하다.

더위에 지쳐 목숨부지하기도 어려웠던 채소는 명절유세로 값이 다락같이 오르고 있건만 수확이 적어서 농가 수입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는데 올 추석은 지나온 어떤 명절보다 설렁할 것 같다.

불경기라는 경제용어가 시골 밭고랑에까지 파고들어 산골 할머니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니 말이다.

더구나 대구의 경기는 하도 바닥이라 '경제'라는 말조차 없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명절인데 주눅 들린 어깨를 펴고 달구벌 마당에서 한바탕 덩실거리면 어떨까. 추석연휴 동안에는 마음에 쌓인 찌꺼기를 털어 버리고 모두 하나가 되어 흥을 돋우면 좋겠다.

하나 된 힘으로 다시 일상과 싸운다면 마침내 좋은 시절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잠시 잊어버리자! 그러나 현실의 목표는 잃지 말자!! 신복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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