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뒤 호텔방 '콕', 시간죽이기만
지난 4월 EXCO와의 전시컨벤션 협력사업 협의차 대구를 방문, 하룻밤을 묵고 갔던 싱가폴 전시컨벤션센터(SINGEX)의 한 팀장급 직원. 그는 EXCO 관계자들에게 '대구의 밤'이 너무 답답하고 따분했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나라를 떠났다. 업무가 끝나 저녁식사를 마쳤지만 호텔내부는 조용하기만 했고, 저녁시간대 이용 가능한 시내 투어코스조차 찾을 수 없었다는 것.
싱가폴 전시컨벤션센터 관계자가 얘기한 것처럼 전시회와 국제회의 참석차 대구를 찾는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내뱉는 말이 "전시, 회의가 끝나고 나니 할 것이 없더라"다. 대구의 '밤 문화(Night Life)'가 외국 선진도시는 물론, 서울.부산 등 국내도시에 비해서도 뒤떨어져 외국인들이 '친근감'을 느끼는 국제도시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대구의 잠재적 밤 문화 인프라가 적은 것이 아니라며 지금부터라도 '진주'로 가꿔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결코 늦지 않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 대구의 밤은?
미국 델파이 임원 및 엔지니어, 일본의 컨설턴트 등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한국델파이(대구 달성공단). 이 회사는 외국인들이 찾아올 때마다 업무종료후의 저녁시간대 접대 코스 마련에 진땀을 흘린다. 외국인들은 '대구만의 특별한 것'을 맛보고, 보기 원하지만 좀처럼 찾기 힘들다는 것.
김진희 한국델파이 홍보팀 차장은 "미국인들에겐 저녁식사로 한정식을 대접하는데 식사장소도 단조롭고 식사 이후로는 마땅한 코스가 없다"며 "외국인들은 술 일색의 단조로운 우리나라 '밤문화'와는 달리 지역색을 느낄 수 있는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원하는데 대구는 이런점에서 '특별한 것'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박영호 대구컨벤션뷰로(컨벤션 유치 전담기구) 마케팅팀장은 "국제회의에 참석한 외국인들이 회의일정을 마친 저녁시간대 호텔에서 스테이크로 식사를 하고 나면 '주무시러 가세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 대구의 현실"이라며 "외국인들은 체력이 굉장히 좋아 호텔을 벗어나 밤늦게까지 시내관광을 하며 오랜만에 만난 회의 참가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데 데려갈 곳이 없어,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추억없이 대구를 떠난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대구컨벤션뷰로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재즈바 등 자신들에게 익숙한 문화체험은 물론 막걸리집 방문 등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를 접하기 원하지만 제대로된 저녁시간대 관광정보를 잡지 못해 택시를 타고 헤매다 물건 몇 개만 사든 채 호텔로 돌아온다는 것.
오경묵 EXCO 홍보팀장은 "서울사람들조차 대구의 나이트 라이프 인프라가 너무 빈약해 전시회 유치가 힘들 것이라는 충고를 한다"며 "실제 최근 만난 전시회 관계자들은 대구의 팔공산, 들안길 등이 좋기는한데 너무 단조로왔으며 대구도 이젠 다른 도시에 다 있는 뻔한 것보다는 보다 다양한 밤 문화를 개발, 외부 사람들에게 홍보할 수 있어야한다는 충고를 했다"고 말했다.
이재학 대구시 관광협회 팀장은 "대구에 오는 외국인 대다수가 짐을 풀어놓고 외지로 간다"며 "도심에 특히 야간에 볼것, 먹을것이 없어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문화관광부가 최근 신규 카지노 허가와 관련, 한국관광공사 조사자료를 파악해본 결과, 대구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도시 순위에 아예 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관광협회 조사결과, 전국적으로 매년 500만명의 외국인이 들어오지만 대구엔 20만명 이하(올 해 기준)가 머물러(호텔 투숙객 기준) 대구의 외국인 방문객 점유율이 10%에도 못미친다. 때문에 관광공사 홈페이지에서조차 대구는 빠져 있다는 것.
◇외국의 밤은?
외국 대도시들은 화려한 밤 문화를 뽐내며 낮에 볼일을 끝낸 외국인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더욱이 외국 대도시들은 암스테르담 등 일부 도시에서 윤락 등 퇴폐적인 밤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밤 문화의 주류는 식사와 행사관람, 관광을 곁들여 가족들이 함께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재들.
외국 대도시들은 외지 방문객들이 비즈니스를 마친 뒤 해당 도시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저녁시간대 관광상품들을 코스별, 가격대별로 개발, 호텔에서 홍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도시 부가가치를 키우고 있다.
파리의 경우, 에펠타워에서의 저녁식사, 그리고 대규모 공연장인 무랑루즈에서의 춤 공연 관람 등을 묶은 상품이 일반적 밤 문화 코스. 5시간 정도 걸리는 이 상품은 우리돈으로 20만원 정도면 즐길 수 있다. 개선문이 있는 샹젤리제 거리내 식당에서의 저녁식사, 리도쇼 관람 등이 들어있는 관광상품도 인기다. 세느강의 유람선을 타고 식사를 하며 밤늦게까지 야경을 보는 것도 인기 상품. 보통 새벽 1, 2시까지 이어진다.
미국 시카고도 이 곳의 야경을 즐기며 저녁식사를 하고 칵테일을 마시는 '야간 관광 상품'이 인기다.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소개된 식당 및 택시회사, 바(Bar) 등이 무려 6천여곳. 일본도 도쿄 빅사이트(전시장) 주변 식당, 바, 나이트클럽 등을 팩키지로 묶은 야간 관광상품이 각 호텔마다 안내돼있고 독일은 거리에 산재한 맥주집 자체가 밤 관광 상품이다.
백창곤 EXCO 사장은 "미국 남부에 가면 옛 흑인노예들이 살던 폐가에서 컨벤션 환영 만찬을 열고 고풍스런 시청 청사에서 외국인 환영행사가 열린다"며 "밤 문화라고 해서 특별한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며 지금 있는 곳이라도 제대로 활용하면 외국인들은 감탄하고 입소문이 나면 또다른 외국인들이 몰려온다"고 했다.
대구컨벤션뷰로에 따르면 서울만해도 한강, 이태원, 북악스카이웨이 등을 둘러보는 야간 시티투어(저녁 6시∼자정) 상품이 있다는 것이다.
임경호 대구상의 조사부장은 "그리스 아테네에 가면 파르테논 신전 등에 빛을 쏘는 방식으로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는 야간 빛 관광도 있다"며 "외국에서는 작은 것이라도 동원, 외지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바꿀까?
전문가들은 현재 있는 것들을 찾아내 알리고 외국인들을 그 곳으로 이끄는 방법을 만들어내야한다고 말한다. 하드웨어가 없는만큼 소프트웨어로 승부해야한다는 것.
하종수 대구시 관광협회 사무국장은 "금호강변, 신천도 훌륭한 야간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전환부터 해야한다"며 "싱가폴에 가보면 대구 금호강, 신천보다 더 못한 곳인데도 관광지라며 만들어놓고 외국인들을 끌어들이는데 외국인들이 싫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 부장은 또 "현재 경쟁력이 있는 곳은 동성로, 서문시장 등인데 서문시장은 일찍 문을 닫아버려 밤문화 상품으로 내놓기에 어려움이 많다"며 "현재도 밤 유동인구가 많은 동성로와 들안길을 우선적으로 주목, 관광코스로 만들어봐야한다"고 했다.
백창곤 EXCO 사장은 "한 외국인이 동성로를 보고 감탄했다는 말을 해온적이 있다"며 "로드숍, 전통음식점, 재즈바 등 없는게 없는 이 거리를 그냥 내버려두면 안된다"고 했다.
백 사장은 버스 1대 갖고 와서 수십명씩 태워보내는 '유치원 소풍식' 외국인 관광을 지양해야하며 외국인 1, 2명이 자발적으로 갈 수 있는 관광코스를 개발,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원하는 시간에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홍보체제를 갖춰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구전시컨벤션뷰로는 저녁식사와 술, 볼거리를 더한 동성로 야간 관광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작업에 들어갔으며 회원업체를 모집, 연내로 상품을 만들 방침이다.
김원인 계명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밤 문화를 개발하는데 있어서 주제와 이야기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져야한다"며 "이 관광상품은 이런 주제가 있다는 식의 설명이 붙어야 인기를 끌 수 있으며 당장의 인기만 고려한다면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대구의 특색과 고유성을 접목할 수 있는 관광 상품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만제 대구시 경제고문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구의 중추관리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밤 문화 개발 등 위락기능 개발이 시급하다"며 "결국 이러한 노력이 대구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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