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의 폐지문제로 뜨겁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자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이 법의 합헌성과 규범성을 인정하며 이례적으로 국회에 훈수까지 하였다. 이어 대통령은 TV에 나와 공개적으로 폐지 의견을 나타냈다.
여당과 일부야당은 전면폐지 쪽으로 의견을 정하였다고 하고 제1야당 총재는 '모든 것을 걸고 국보법폐지를 막겠다'며 일전불사의 의지를 밝혔다. 국가보안법의 폐지 여부는 인권 그리고 통일과 곧바로 닿아 있다. 사사로운 이익이 개입될 수도 없고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지금껏 56년 동안 국가보안법의 적용과정을 보아왔다. 그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국가보안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아 온 이들 중에서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이 법의 폐지를 반대하는 모습에 놀라움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은 '국가'가 아닌 '정권'의 안보를 위하여 만들어졌다. 국가보안법은 정부 수립 후 4개월도 되지 않은 1948년 12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급조되었다.
형법제정보다 5년이나 앞서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이 법은 비상시기에 대처하기 위한 한시법으로 형법제정과 함께 폐지가 예정되어 있었다. 형법제정 시 김병로 당시 대법원장이 '형법전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다'며 그 폐지를 주장하였음은 50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새겨들을 대목이다.
그러나 이미 국가보안법의 달콤함을 경험으로 인식한 권력에 의해 이 법은 존치되었고 이후 충실히 정권유지에 복무하여 왔다. 이 같은 수많은 사례 중 몽향(夢鄕) 최석채 선생의 예는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으로 적용되어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지역에서 발행되던 '대구매일신문'의 주필이던 최석채선생은 1955년 9월 13일 그 유명한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을 써서 정치행사 때나 고위층 인사의 영접 시에 어린 학생들을 동원하여 길거리에 내세우는 당국의 처사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 사설이 나간 다음날 신문사에는 관변단체들이 난입하여 테러를 자행하였고 선생은 9월 17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사설의 내용이 북한방송에 인용되었다는 것이 구속의 주요 이유였다.
"정부를 참칭"하고 "변란을 야기"하는 엄청난 국가보안법의 구성요소는 이처럼 정권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도구로 전락한 채 적용되었다.
선생은 사후 국제신문협회(IPI)에 의해 세계언론자유영웅 50인의 한사람으로 선정되었고 선정된 공적 중 하나는 위 사설이었음은 국가보안법 적용의 부끄러운 일면이다.
그 외에도 국가보안법의 적용과정에서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빨갱이로 몰려 고통받았고 일반 국민들은 국가보안법에 길들여져 가면서 서로를 감시하고 스스로를 검열하는 상시적 인권침해의 상태에 내던져졌다.
또한 국가보안법은 사상, 이념마저도 물리력으로 억압하여 왔다. 비판적 토론, 학습의 장은 의식화작업으로 매도되어 처벌되었고 금서목록은 해마다 늘어갔다.
고전은 물론 대학교재를 포함한 수많은 책과 문건이 이적표현물로 분류되어 그 소지만으로도 처벌되는 시대를, 훗날의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 할까.
누군가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사상적 무장해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따져보면 사상의 자유를 형사처벌로 억압함으로써 수많은 사상적 미숙아를 만든 국가보안법이 결과적으로 안보마저 심각히 위협해 왔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국가안보는 자유로운 이념과 사상의 교류가 보장됨으로써 우리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공감대가 구성원 사이에 형성될 때 강력하게 보장되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그간 자유로운 통일논의와 남북간 화해노력을 실질적으로 봉쇄하여 왔다. 북한은 1991년 남한과 함께 UN에 동시 가입한 국제법상 주권국가이자 6.15공동선언에 의한 통일의 협력자이다.
그럼에도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고 북한을 돕는 행위를 '이적행위'로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은 남북화해협력의 시대에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이 존치하는 한 우리의 시대가 '야만적'이라는 주장은 아프지만 맞다. 이제 국가보안법을 법전에서 꺼내 박물관 한켠으로 보내어 후대에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경계토록 하는데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금강산 여행길에 북의 메마른 산야와 그들의 초라한 모습에 가슴 아파하던 초등학생 내 아이에게, 내가 그 나이에 전쟁의 공포와 뿔 달린 괴물에 쫓기며 가위 눌리던 공포의 밤을 또다시 경험하게 할 수는 없다.
송해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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