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무엇보다 민족이 우선이라는 주장에 여전히 힘이 실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 민족으로 엮어주는 구실을 하며, 그 동질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두말할 나위 없이 '역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역사는 옛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이 말해주기도 하지만, 그 숨결들이 살아 있는 문화유산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문화유산이 바로 역사를 증명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역사의 얼굴'이며, '우리'라는 울타리를 만드는 구실도 하고 있다.
▲요즘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심한 홍역을 앓고 있는 것도 역사의 중요성 때문임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가는 한심한 수준으로 보여진다.
우리의 얼굴이자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문화재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과연 제대로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는지 새삼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문화유산 보존.관리 예산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29위로 밝혀졌다.
국회 문광위에 발표된 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의 이 분야 2002년 예산은 일반회계의 0.29%로 그야말로 초라하다.
상위권인 미국.일본.독일 등은 우리보다 무려 6배 이상이나 많고, OECD 30개 회원국의 평균 예산도 3.9배에 이르고 있다.
▲선진국들은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에 많은 관심과 예산을 쏟고 있다.
한번 망가지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얼굴이자 민족의 자존심이며, 소중한 관광자원이라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게다.
더구나 문화재가 망가진다고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경우를 보기 어려운 것도 그만큼 문제의 소지들을 사전에 소리소문 없는 대책과 처리로 해결한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문화재를 노리는 범죄는 지능화하지만, 보존.관리 시스템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문화재를 제대로 지키고 가꾸려면 시간과 인력, 재정과 법적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아무리 잘 하려고 애써도 전문인력과 재정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 속의 우리 위상에 걸맞은 문화유산에 대한 시스템 정비와 그에 부응하는 예산을 들여야 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이태수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