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세계화만이 능사인가

입력 2004-09-09 08:50:59

언제부터인가 세계화란 말이 심심치 않게 쓰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60년대에는 '현대'란 단어가 많이 쓰여졌다.

특히 미술계에서 그랬다.

서구미술에 대한 동경심 같은 게 작용했다.

현대란 말은 우리의 후진성에 대한 자각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그 무렵 우리사회에서는 선진국 후진국 하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돌았다.

그러다가 개발도상국이라는 말로 바뀌었는데 한 단계 격상하는 용어 같았다.

그러다가 국제적이란 말로 바뀌어 가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서구권의 미술과 어깨를 같이한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현대미술, 국제적인 것, 그런 말이 매우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이었다.

그런 시점에서 세계화란 말이 등장했다.

그 말은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나온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 나는 사실 잘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요즘 세계화란 말이 도처에서 쓰여지고 유행어처럼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란 무엇인가. 하루면 뉴욕엘 갈 수있고, 미국 돈이 오늘은 얼마 오르고 얼마 내리고 하는 것에 민감한 세상이 되었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유로'라는 하나의 화폐로 통일되었다.

우리나라 자동차공장이 미국에서도 가동이 되고 있고 외국 부동산업자들이 서울의 거창한 빌딩들을 사들였다는 보도가 엊그제의 일이다.

한국제품이 외국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물량은 세기 어려울 만큼의 숫자가 될 것이다.

수출하고 수입하는 물건들이 우리나라 항만에는 산처럼 쌓여있다.

이런 현황을 볼 때 고립해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일이다.

지금 세계는 한 집안화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음식문화도 바뀌고 있다.

새 세대 젊은이들의 식습관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데 우리 고유의 음식은 특별한 집을 찾아가지 않으면 구경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옛날에는 외국음식 못 먹겠더니 요즈음은 그 곳에서도 변화가 생겼는지 내 입맛이 국제적으로 적응이 돼서 그런지 전 같지 않다.

전 세계가 관광지화되고 있다.

그런 영향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계는 좁아지고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말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쓰고 미국사람은 미국말을 한다.

문화 예술도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고있다.

여러 문화가 서로 섞여지고 있는 현상을 본다.

서로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멈춰 서서 한번 반성해 볼 일이 있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빵 한 조각 먹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 음식은 모두 버리고 서양화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처럼 문화형태가 모두 서구화되는 것은 세계화란 본 뜻에 어울리는 것이 아닌 성싶은 것이다.

점차 외세에 밀려서 우리 고유의 것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데 이래서 되는 것인지 반성하는 말조차 듣기가 어렵다.

음악회를 가보면 모두가 서양음악이다.

앞다투어 무슨 오페라다, 무슨 뮤지컬이다 해서 유럽이나 미국에서 보던 것들이 서울에서 흥행되고있다.

우리 음악은 없는 것일까. 미술도 비엔날레란 행사를 의욕적으로 하고 있다.

특별전도 많이 생긴다.

좋긴 하지만 거꾸로 뒤집어 보면 문화의 서구화를 재촉하는 바람몰이 같기도 한 것이다.

지난날 우리도 우리 것 찾기, 민족 혼 살리기 등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소리하면 이상한 사람, 고루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민족정신이라든지 한국적이라는 말을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강대국들은 국가주의를 하고있다.

그런데 작은 나라들이 강대국들의 문화에 편승하는 것을 세계화라고 해야 옳은가.

요즘 우리나라에는 흑백논리라는 것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문화가 정치형태를 따라간다는 말을 어떤 친구가 한 일이 있었다.

정치가 독재형태가 되면 문화도 그런 모양으로 따라간다는 말이었다.

작은 나라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우선 그 '정신'을 지켜야 되는 것인데 자칫 세계화라는 바람에 휩쓸려서 고유의 색깔을 모두 잃을까봐 염려를 하는 것이다.

획일화란 바람직스러울 수가 없는 일이다.

최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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