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줄어든다-'고용없는 성장' 실태.대책

입력 2004-09-07 11:43:44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전기.전자, 기계.금속 등 지역 내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산업군에서조차 고용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성장이 빨라질수록 고용창출능력은 더 떨어지는 '성장과 고용의 반비례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자동화, 공장 해외 이전 등이 가속화하는 탓이다.

때문에 정부가 기업에만 일자리 창출을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정부차원의 일자리 늘리기 대책 수립에 나서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얼마나 심각한가?

대구 성서공단의 사무용 의자 제조업체인 부호체어원. 이 공장의 캐스터(의자 바퀴) 조립라인에는 올 초까지만 해도 25명이 달라붙어 일을 했다.

하지만 현재 캐스터 조립라인에 근무하는 직원은 단 1명. 2억4천만원짜리 캐스터 자동조립시설이 들어오면서 무려 24개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김노수 부호체어원 대표는 "24명을 줄인만큼 1, 2년 만에 기계 구입 비용을 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은 그대로인데 최근 4대 사회보험 강화 등 근로자를 고용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늘어 사람을 줄이는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포항과 인천 2곳의 공장에서 3천300여명을 채용하고 있는 국내 최대 전기로 생산업체인 INI스틸. 이 회사는 3년째 현장 근로자를 거의 채용하지 않고 있다.

포항공장에서 지난해 퇴직자 보충으로 겨우 20여명을 채용했을 뿐이다.

이 회사의 경우, 근로자 수 변동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 매출은 오히려 늘어났다.

지난 2001년 2조8천700억원에서 2002년에는 무려 3조3천700억원, 지난해는 3조6천억원으로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김창기 포항공장 총무팀장은 "2001년 이후 현장 근로자 충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퇴직 등을 제외하고는 당분간 신규채용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포항공단에서 열연과 냉연제품을 포장하는 업체인 삼정피앤아이는 오히려 근로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01년 941명(1천155억원)에서 2002년 902명(1천94억원)으로 대폭 줄었다가 지난해 겨우 4명이 증원돼 906명(1천378억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회사도 설비자동화가 인력 감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장춘식 삼정피앤아이 팀장은 "이제 노동집약적으로 사업을 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기술집약적으로 사업하는 시대가 됐다"면서 "설비자동화와 1인당 생산성 향상으로 매출을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내화물 제조업체인 포스렉. 이 회사는 매출이 느는데도 지난 2001년부터 매년 평균 30여명이 줄어들고 있다.

이 회사에 따르면 기존 근무 인력의 숙련도가 향상, 줄어든 인원으로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높은 생산성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것. 신규채용도 자동감소분만큼만 충원할 계획이라고 이 회사는 밝혔다.

이 같은 사정은 200여 업체가 입주해 있는 포항철강공단 대다수 회사가 마찬가지다.

공단 내 업체에서 고용하고 있는 근로자 수가 지난 2001년 1만6천148명에서 2002년에는 41명이 줄어들었으며 지난해에는 무려 480여명이 현장을 떠났다.

그런데도 생산성은 향상, 매년 1조원 가량 전체 공단 매출이 늘고 있다.

IT업종이 주축인 구미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구미공단의 생산액은 31년 전 614억원에서 지난해말에는 36조원으로 586배, 수출액은 4천500만달러에서 455배인 205억달러로 늘어났다.

올해도 총생산액 38조원, 수출은 230억달러 등으로 성장세는 지속될 전망.

그러나 구미공단의 고용은 지난 1996년 7만5천명, 1997년 7만2천명 등으로 최고치에 달한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여 지난해말에는 6만8천여명에 그쳤다.

◇원인은?

고용감소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1990년대 이후 기업의 기술.공정혁신 및 자동화, 서비스업의 다양화에 따른 탈제조업(de-industrialization) 바람에다 최근 기업들의 '해외로' 열풍까지 가세하고 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중국 등으로의 생산시설 해외 이전도 일자리를 줄이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현재 구미공단의 154개 기업체가 지난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8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바다건너에 해놓고 있다.

김종배 구미상의 조사진흥부장은 "현재 국내 기업의 30% 이상이 이미 해외이전을 했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며 "이 같은 제조업계의 해외투자가 결국 산업공동화를 초래하고 국내의 고용시장을 얼어붙게 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고 했다.

결국 구조적 원인이 일자리를 줄이는 '역할'을 하면서 향후 일자리가 더 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구미상공회의소가 최근 IT.전자산업단지인 구미공단에 대해 기업경기 전망(BSI) 조사를 한 결과, 체감경기는 다소 개선될 것으로 파악됐지만 유독 고용만은 떨어질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고용감소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기업들이 한목소리로 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밝힌 '2004년 주요 업종별 고용전망' 보고서에서도 올해 평균 생산증가율은 5.9%에 달하지만 이에 따른 고용증가율은 2.0%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대한상의는 반도체의 경우 고용은 생산라인을 중심으로 6.7% 증가하는 데 그치고, 전자 업종도 생산은 15.5%나 확대되지만 고용은 5.5% 늘어나는 데 불과하다고 전망해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어떻게 극복할까?

국내 최대철강업체인 포스코는 최근 '색다른 행동'을 해 주목을 받고 있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매년 100~150여명 가량 현장 근로자들을 신규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2, 3년 후 퇴직자들을 염두에 두고 경기가 좋을 때 미리 인력을 확보해 놓으려는 전략 때문이다.

박세연 포스코 인력지원팀장은 "최근 들어 자연퇴직이 줄어든 데다 고용유발계수마저 낮아 대규모 신규채용은 쉽지 않다"면서 "청년실업 해소차원에서 매년 100명 내외의 신규인력을 충원하고 있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잊어버릴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태현 포항상공회의소 과장은 "기업들이 신규 고용 없이 1인 2역 등으로 생산성만 높이는 구조로 바뀌어 청년실업 해소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여유인력 부족에 따른 근로자들의 조업피로도가 누적되는 등 업무강도가 종전보다 훨씬 높아지게 됐으며 기업들이 지나치게 인원 감축에 나서는 것은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했다.

류권우 계명대(경영학) 교수는 "서비스 부문의 침체와 수출 내수 경기양극화로 일자리 감소가 심화되고 있다"며 "기업들이 자동화 등 무조건적인 외형 인프라 확충에 나서기보다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 '사람'을 어떻게 제대로 활용해서 생산성을 높일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또 "근본적으로 기업 경영에 있어서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 될 수 있다"며 "정부도 제대로 된 일자리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김성우.이상원.최경철.이상준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