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주겠다 법원브로커 조심을...

입력 2004-09-06 12:13:44

"내가 어리석기도 하지." 포항시 흥해읍에 사는 김모(50.여)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벌써 넉달째다.

김씨의 속앓이가 시작된 것은 지난 5월.

당시 김씨의 남편은 특정 사건에 연루돼 포항지청에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혼비백산한 김씨는 이리저리 혼자 뛰어다니던 중 포항지원에서 50대 초반의 한 남자를 만났다.

법정에서 심리재판을 지켜보고 나오던 김씨에게 이 남자가 다가와 귀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내가 판사를 잘 아는데 적당히 인사하면 알아서 빼주겠다.

" 그 남자는 남편과 같은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들의 공소사실을 줄줄이 꿰고 있었고, 변호사 이상의 지을 동원해 김씨의 혼을 빼놨다.

그러면서 "나를 통하면 남편을 1심에서 보석 또는 집행유예로 빼낼 수 있다.

다만 비밀이 유지돼야 하는 만큼 가족이나 변호사 등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된다"며 신신당부했다.

특별히 의지할 곳도, 상의할 곳도 없었던 김씨는 이 남자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졌고, 며칠 후 동생을 비롯한 친척들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애걸복걸해 3천만원을 빌렸다.

김씨는 그 돈을 약속 장소인 포항지원 주차장으로 가서 건네주었다.

그 남자는 "2층 판사실로 가서 봉투를 전해줄 테니 1층 정문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2시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한 느낌에 휩싸인 김씨는 법원 구내를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그제서야 2층으로 오가는 통로가 정문쪽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땅을 치고 통곡했지만 이후로 그 남자는 연락 한 번 없었다.

그간 통화한 전화도 모두 공중전화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름을 알 수 없으니 사법당국에 고발도 할 수 없다.

김씨의 남편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복역 중이다.

공직에 있는 김씨는 "솔직히 남편을 빼내준다는 말에 무조건 믿었을 뿐,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며 법정 주변 상황에 문외한이었던 자신을 질책했다.

전셋집으로 옮긴 김씨는 "친척들에게 빌린 돈 3천만원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걱정"이라며 사기사건에 휘말린 후 잠도 제대로 못자는 등 심한 우울증으로 병원을 드나들고 있다.

그는 "생각할수록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더 이상 자신처럼 법정주변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털어놓는다"며 울먹였다.

포항.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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