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제일 맛있던 스테이크는 캐나다에 갔을 때 먹었던 스테이크야. 그리 크지도 않고 허름한 작은 가게에서였지. 거기다 캐나다 달러로 10불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니까" 하고 이어지는 말, "한국, 아니 최소한 대구에는 스테이크 잘하는 곳 없는 것 같아. 고기도 뻣뻣하고 맛이 없어."
내 친구는 음식, 특히 외국음식이 화제에 오를 때면 항상 같은 레파토리를 읊조리곤 한다. 그럴 때 난 대충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많이 못 다녀봐서 그런 게 아닐까?" 하거나, "너무 많이 익혀 먹은 거 아니에요? 스테이크는 많이 익히면 맛이 없잖아요."라고 대구한다.
사실, 난 스테이크를 많이 먹어보지 못했다. 맛있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비싸서 어딜 가든 눈이 선뜻 그 쪽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구에서 유명하다는 곳에서는 대체로 다 먹어보았다는 그 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 함께 스테이크를 한 번 먹어보자 생각했다. 스테이크도 어차피 세계음식에 속하는 요리 아닌가?
찾아간 곳은 엔조라고 하는 갤러리와 함께 있는 작은 카페-레스토랑.
언뜻 보기에 골목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낮은, 녹이 슨 건물. 밖에선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문이 열려있는지 코를 문에 바짝 대어 봐야 알 것 같다. 문 앞에 걸린 'open' 이라는 팻말을 보고서야, 열려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pull' 이라는 명령어에 따라 문을 힘껏 당기고 내부로 들어선다. 음식을 맛보러 간 날, 좁다랗고 긴 공간에 다른 때보다 의외로 손님이 많았다. 갤러리가 오픈해서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미술 작품들을 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분위기와는 달리 의외로 빈약(?)해 보이는 메뉴판에 그 친구는 놀랐다. 보통 사무용품으로 많이 쓰는 얇은 클리어 파일에 프린트한 종이를 꽂아 둔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 중, 이번만은, 다른 음식들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스테이크가 있는 페이지로 눈을 돌려 그 곳에 있는 종류별 스테이크를 몽땅 주문했다.
안심 스테이크와 오리엔탈 소스의 립아이(꽃등심) 스테이크, 그리고 오렌지소스의 돼지 목등심 스테이크. 돼지고기도 스테이크라 할 수 있나 싶은 의구심도 살짝 들었지만 보기 드문 메뉴이므로 일단 도전. 안심스테이크를 주문하니 "어떻게 익혀드릴까요?" 하고, 종업원이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주로 '미디엄'으로 먹는 편이지만, 그 날만큼은 함께 갔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미디엄-웰던'으로 주문을 했다.
단호박으로 만든 샛노란 수프가 먼저 나왔다. 시즈닝과 소금을 살짝 뿌려 한 스푼씩 떠서 먹는다. 제법 맛이 괜찮다. 출발이 나쁘지 않군. 각기 다른 종류를 시켜 시간이 조금 걸려 메인 요리가 나온다. 안심스테이크는 둥근 접시에, 나머지는 사각형 접시에 제법 근사하게 나와 기분이 좋다. 미디엄-웰던으로 익힌 고기는 붉은 색깔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육즙이 말라 퍽퍽하진 않았다. 가운데는 부드럽다. 특별히 조미된 것이 없고, 포도주를 넣고 끓인 소스가 살짝 끼얹혀 있었다.
꽃등심과 돼지 목등심은 마치 생선회를 두텁게 친 듯, 저며져 매쉬 포테이토 위에 가지런히 놓여 나오고, 그 위에는 아몬드 같이 고소한 향기를 풍길 것만 같은 바짝 볶은 마늘이 놓여 있었다. 이 마늘과 매쉬 포테이토, 그리고 고기를 함께 곁들여 먹으니 고소한 맛과 향이 입안에 퍼지고…
안심스테이크는 미디엄으로 구워 육즙이 더 있어 진한 맛이 베어 나왔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괜찮은 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기준에선 '어떤' 호텔에서 맛보았던 안심스테이크보다 훨씬 나았다. 내 친구도, "잘 하는 편이군요. 하지만 그래도 캐나다에서만큼 맛있지는 않아요.", 라고 한다. 어찌 보면 그 친구나 나나 고기 자체의 맛보다는 소스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탓이리라. 그 친구도, 나도 양념된 고기가, 그것도 달짝지근한 오렌지 소스를 곁들인 돼지 목등심이 입맛에 더 잘 맞았다. 또 다른 제 3의 인물은 립아이가 그 중 가장 맛있었다는 평가였지만…
처음 봤을 때 너무 적어보이던 양은 에스프레소로 후식을 결정할 만큼 배가 아주 부른 정도였다. 친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혹 모르겠다, 음식량이 많은 사람들, 혹은 캐주얼 패밀리 레스토랑을 즐겨 찾는 이들에게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런지도. 하지만 후식으로 나오는 커피와 치즈케잌을 먹고 나니,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안심 스테이크 : 2만 4천
립아이 스테이크 : 1만 8천
돼지 목등심 스테이크 : 1만 4천
위치 : 청운맨션 근처, 구.엠포리오 아르마니 건물 옆 골목으로 10m
* 스테이크, 알고 먹을까요?
- 주로 스테이크 하면 비프스테이크를 말합니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는 구은 정도가 맛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익은 정도에 따라 '레어(rare-거의 익지 않은 상태)', '미디엄(medium-약간 익은 상태)', '웰던(well-done-바짝 익은 상태)'으로 이것은 개인 취향의 문제라 무엇이 가장 좋다 말할 수 없지만, 고기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미디엄-레어' 라고 합니다. 스테이크를 자를 때 나오는 붉은 물은 피가 아니라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육즙이라고 하구요. 구울수록 육즙은 날아가고, 육질은 질겨집니다. 한국식 고기 요리야 얇으니 바짝 구워져도 질긴 채 한 두 점 먹는다지만, 두꺼운 스테이크의 경우에는 조금 곤란한 경우들이 생긴답니다. 그래서 웰던을 시킬 경우 너무 팍팍해서 고기가 맛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 그리고 뉴욕 스테이크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왜 뉴욕 스테이큰지 아시나요? 그건 바로 스테이크의 모양이 뉴욕주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저는 그동안 무슨 양념된 스테이크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자세한 건 인터넷을 검색해 보세요. '뉴욕 스테이크'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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