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저자-몸에 안맞는 개혁 '투자의 붕괴'

입력 2004-08-27 10:03:13

'개혁의 덫' 펴낸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

" '개혁'의 근본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문제는 개혁의 방향에 있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점조차 다 버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에는 맞지 않는 제도나 정책을 '개혁'이란 명분으로 밀어붙이는 잘못된 현실은 분명 따져봐야 합니다.

"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경제적 제국주의에 열을 올리는 선진국들의 위선을 고발한 장하준(41)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가 최근 '개혁의 덫'(도서출판 부키)을 펴냈다.

이번 책에서는 우리 경제에 초점을 맞춰 경제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경제 흐름을 다시 성장세로 돌아서게 할 방법은 없는지 등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장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개혁'이라는 구호 아래 7년 동안을 선진국에 버금가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애썼는데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경제는 어렵고, 사회적 불평등이나 갈등은 더욱 심해지는 등 우리 경제가 '개혁'이란 '덫'에 걸린 상태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문제가 있다면 진단을 하고, 방향이나 정책이 틀렸다면 빨리 고쳐야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지요. 그런데도 개혁이 절대선이란 의식에 사로잡혀 과거와의 절연만을 서두른 결과 당초 의도와는 정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

이 책에서 장 교수는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 투자의 붕괴. 우리 경제의 국민소득 대비 투자율이 1990~97년 사이에는 평균 37.1%에 달했으나 98~2002년에는 3분의 2 수준인 25.9%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미국식 개혁만이 해법일까?' '자유방임 정책이 초래한 것은' '정치 논리의 개입도 필요하다' '반산업 정책론자들의 오만과 편견' '인터넷 경제의 미래가 장밋빛이라고?' '누구를 위한 재벌 개혁인가?' '국영 기업, 매각만이 해결책이 아니다' 등의 글을 통해 개혁으로 인한 '그늘'을 짚었다.

외환위기 이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장 교수는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시장에 개입한 과거 정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던 개혁론자들에게 신자유주의는 구미에 당기는 이념이었어요. 이제는 정부가 금융시장에 조금만 개입하려 해도 '관치금융'이라는 반발을 살 정도가 됐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시장에 대해 정부가 적절한 처방도 못할 상황이 됐다는 것입니다.

" 장 교수는 "미국도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국민소득이 3만~4만달러에 달하는 선진국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하기보단 1만달러인 우리 수준에 맞는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선진국 시스템에 대한 환상이 생겨 우리 것은 나쁜 것이란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다"며 "인권탄압이란 그늘도 있지만 과거 우리가 이룩한 경제발전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우리 경제에 대한 해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장 교수는 "기업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게 하고, 이것이 설비투자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시스템이 기업의 장기적 투자를 지원하기보다는 투기자본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또 차입경영에 대해 부정적인 금융정책을 추진한 결과 그동안 기업들은 과감하게 투자를 하기보다는 부채를 줄이려는 데 돈을 썼어요. 이제부터라도 기업들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자금이 기업으로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 다음 달 영국으로 돌아가는 장 교수는 "연구 역량의 3분의 1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경제 연구에 쏟으려 한다"며 "만족한 결과물이 나오면 또 책을 펴내겠다"고 밝혔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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