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번영의 길로 가려면

입력 2004-08-26 08:45:21

늦은 저녁 시간에 한중수교 12년을 기념한 TV특집을 보았다.

잘 살고 싶은 욕구, 일류기업에 대한 염원, 국가적 자신감이 어우러진 현장의 열기를 프로그램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조간 신문은 '한국 대 중국 투자 올 35억달러,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사실상 세계 1위'라는 기사로 사람의 눈길을 끈다.

이런 투자에 힘입어서 한국 기업의 중국 내 현지 법인의 고용인 수는 약 150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 젊은이들 가운데 실업자 수가 거의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어두운 소식이 전해진다.

한 나라가 잘 살 수 있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근로자 1인당 자본장비율을 높이고, 주어진 장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생활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은 곧바로 이 땅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하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야 함을 뜻한다.

그리고 좀더 정성을 들여서 일해야 함을 뜻한다.

투자 없이 근로자의 자본장비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외자이건 내자이건 간에 돈을 벌고 싶은 욕구가 분출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처럼 단순한 조건들이 이 땅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환치기 수법을 동원해서 바깥으로 나가는 돈 때문에 관계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에서 오늘 우리 사회의 현주소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이 정도의 생활 수준을 만들어 내는데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정말 고생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생활 수준도 쉽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날로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때 번영한 국가라 하더라도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나라들을 손꼽자면 20세기만 하더라도 여러 나라를 들 수 있다.

개방과 경쟁에 모두가 마음의 문과 제도의 문을 열고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게끔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한중 수교 12주년 특집에 중국의 한 기업인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그는 오랫동안 국영 기업 일하다가 관료주의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93년에 창업해서 외형 3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래빗 머시너리 창업자인 려우 쿼칭씨다.

"저는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말합니다.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 밖에 없다.

"

중국 사회의 약진에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야 말겠다는 자립자존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정신을 갖지 않고서 오랜 시간 동안 번영의 길로 달려간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 한국 사회를 바라볼 때마다 우려할 만한 일은 문제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는 일이 부쩍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못살고 내가 부족한 것은 모두 당신들 때문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걱정할만한 현상 가운데 한 가지이다.

경제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경로의존성(path dependance)이란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어떤 제도 변화나 사건이 이후의 한 나라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근래 한국 사회는 경로의존성이란 용어를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나는 한국 사회가 예상보다 휠씬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생각 때문일 것이다.

강건한 생각 대신에 나약한 생각들이 지배하는 곳에선 부의 창출보다 부의 분배가 유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기업이건 사람이건 많은 자원들이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이다.

를 집필한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를 공부하고 집필 활동을 하면 할수록 한가지 사실이 또렷해진다고 말한다.

"한 국가의 번영이란 주어진 자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자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에 좌우된다.

" 이점에서 한국 사회는 훗날 크게 후회할 실책을 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공병호(공병호 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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