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나눠 하는게 보기도 좋아요"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의 몸을 아낄 줄 모르던 희생적인 어머니, 아내의 모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요즘 젊은 주부들은 '나 자신도 중요하다'며 무조건적인 희생을 원하지 않는 경향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들을 바라보는 나이 든 세대의 생각은 어떠할까. 지난 20일 한 식당에서 50대 후반 주부 3명이 모여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참석자
손기순(59)씨=전국주부교실 대구지부 회장, 남매
신정원(58)씨=전업주부, 아들 2
황미영(56)씨=전업주부, 아들 2
-요즘 젊은 여성들을 보면 옛날과는 사고방식이나 사는 모습이 참 다르다 싶죠?
▲손기순=얼마전에 딸과 사위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어요. 손녀가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확 토했는데 우리 딸이 휴지를 꺼내 주니까 사위가 토한 걸 싹 주워 담아서 치우더라구요. 사위는 당당히 하는데 내가 얼마나 미안하던지…. 딸 보고 "너는 뭐 하고 있니" 하니까 "평상시에 잘 하니까 이럴 때 가끔 남편이 해야죠" 하는데 젊은 사람들 생각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남편은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서 대우를 받아야 되는 게 아니고 집에 와서도 가족에게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황미영=요즘 맞벌이 부부도 많은데 집안 일을 똑같이 해야지, 여자만 하라고 해서는 안되잖아요. 내가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아들이 너무 자기만 생각하고 편안히 있는 걸 바라지 않아요. 부부가 같이 분담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신정원=그것도 남자 성격이 안 맞으면 못 해요.
▲손=아직 가부장적인 의식이 있기 때문에 젊은 남자들도 대접받고 싶어하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 자기 일 있는 여자들이 대부분 당당하거든요. 너, 나 딱딱 따지고 드는 세상인데 남자가 바뀌지 않으면 결혼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여자들을 보면 조금 더 늦게 태어날 걸, 부럽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황=부럽다는 생각보다 세월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옛날 조선시대때도 집안 곳간 열쇠는 안주인이 쥐고 있었고 사대부 집안에서는 남편이 안주인에게 말을 함부로 못 놨다고 하잖아요. 집안에서 안주인의 위치가 당당하게 있었던 거에요.
▲손=제 친구는 아들집에 가서 밥 먹고 나서 며느리가 "자기야, 쓰레기" 하니 왕자처럼 키운 아들이 "응, 알았어" 하고는 쓰레기를 들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속에서 불이 나 바로 집을 나왔다고 하더군요.
▲황=옛날에는 남편이 해주고 싶어도 부모 눈치가 보여 못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남자는 아예 부엌에도 못 들어가게 했으니까. 저는 밥 먹고 나서 며느리가 설거지하고 있으면 아들이 커피 탄다고 물을 끓여 커피잔을 가지고 오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신=그런 모습이 좋아 보이는 게 대리만족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못 해봤기 때문에.
-요즘 젊은 주부들은 아들도 설거지 시키고 일부러 집안 일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더군요.
▲황=요즘은 독신자로 혼자 살아가는 경우도 많으니까 스스로 할 줄 모르면 안 될 것 같아요. 작은 아들이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며 혼자 자취하는데 "빨리 결혼해서 와이셔츠 빨아주고 밥이라도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 했더니 "잘 모르고 계시는 모양인데 요즘 어디 여자가 밥 하고 빨래하려고 시집 옵니까" 하는 거에요.
▲신=그래도 밥은 해줘야지. (웃음)
▲손=남자, 여자의 역할이 바뀌기도 해 어른들이 보기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요.
▲황=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이해해야죠.
▲신=달리 방법이 없어요.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맞춰 나가야지. 그래야 우리가 편해지고 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황=그 말이 맞아요. 우리 세대는 헌신적으로 시어른을 모셨지만 며느리에게는 이거 해라, 저거 해라는 말을 안 하고 살잖아요. 우리는 희생하는 세대로서 희생하는 모습은 우리 세대로 끝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설문조사 결과 50대 주부의 경우 집안 일을 전담한다는 응답률이 높으면서도 주부의 권위가 남편보다 더 인정된다는 의견도 비교적 높게 나오더군요.
▲황=그럴 수밖에 없어요. 50대 주부들은 옛날부터 여자는 집에서 살림, 남자는 밖에서 직장생활하고 돈 벌어오는 역할 구분이 돼 있었으니까요. 우리 때만 해도 여자들이 학교 교사 정도 외에는 직장생활하는 경우가 잘 없었어요. 여자는 내 직업은 주부니까 집안 일은 내가 하는 거고 남편이 집안 일을 안 해준다고 불평할 생각도 안 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 여자도 배짱이 생기는 것 있죠.
▲손=거꾸로 남편을 윽박(?)지르게 되는 세대가 바로 50대이지 싶어요. 애 학교문제, 결혼문제 등 주도권은 여자에게 있거든요. 여자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거죠.
▲황=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그렇죠. 행여나 여자가 안 산다고 하면 어쩔 거에요. 50이 넘어 60이 되면 남자가 불쌍해져요. 사실 여자가 도망갈까 걱정이죠. 일본에서도 황혼이혼이 문제라고 하잖아요.
▲손=며느리가 설사 싫어도 손자가 있잖아요. 이혼하면 내가 맡아야 되니 옛날 시어머니처럼 잘 못했다고 따지지 않고 마음넓게 봐줄 만큼 내다보는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자신이 편해지려고 말이죠. (웃음)
▲신=자식이 자기 식구들끼리 잘 살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아요.
▲손=과거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수직적인 관계가 좋게 말하면 자유로워진 거고 평등하게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서로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집안이 편치 않으니까.
-그런데 이혼 취재를 해보니 요즘은 시어머니보다 친정어머니의 간섭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손=딸이 내가 살던 것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해주려고 친정 어머니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해요. 옛날에는 결혼하면 그 집 식구가 돼 살아라 했는데 요즘 이혼 법정에 가면 친정 어머니가 이혼을 당당히 해야 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딸도 손해 보는 건데 문제인 것 같아요.
▲황=우리 세대가 억울하게 산 경우가 많았잖아요. 무조건 숙여야 되고. 요즘 엄마들은 자신처럼 평생 골병들고 살지 마라고 한답니다.
▲신=딸 있는 친정엄마 중에 딸이 이혼해도 상관없고 재혼해서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잖은데 이런 사고 자체가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위도 야단 칠 수 있고 공격할 수 있지요. 요즘은 장모때문에 못 살겠다는 사위가 참 많다고 합니다.
▲손=그래서 요새는 장모의 사위 사랑이 옛날같지 않아요. 내 딸한테 잘 해야 하는 거죠.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데.
▲황=그런데 세월이 이리 바뀌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요. 물론 젊은 사람들은 좋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손=혼돈이 오다가 다시 한번 가치관 정립이 돼야 할 것 같아요. 요즘 초등학생을 봐도 질서의식이 없고 아래 위가 없잖아요. 요즘 인테리어에서 옛날 한옥 마루가 다시 유행하는 것처럼 옛날의 좋은 것들을 다시 찾고자 하는 흐름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사회.정리=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사진: 요즘 젊은 주부들의 사는 모습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 손기순, 신정원, 황미영씨.(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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