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수학이야기-숫자 0의 의미

입력 2004-08-23 09:24:12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자동차 여행을 할 때였다.

길 옆 허름한 햄버거 가게을 지나다 '햄버거 2,000,000,000,000개 이상 제공'이라는 간판을 보게 됐다.

간판에 세겨진 숫자들은 작은 못으로 고정돼 있었다.

'얼마나 될까' 호기심이 생겨 차를 멈추고 그 수를 세기 시작했다.

0은 모두 12개. 자그만치 '2조'나 됐다.

그때였다.

세찬 바람이 불더니 간판에 세겨져 있는 '0'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0' 하나 없어진 것이 얼마나 많은 햄버거를 없앤 것일까?' 궁금해졌다.

2조에서 0이 하나 빠졌으니 햄버거는 2천억개.

놀랍게도 그 많은 0가운데 단지 0하나가 사라진 것인데 햄버거는 무려 1조 8천억개의 햄버거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0이 가진 대단한 위력을 다시금 생각했다.

학교에서 배운 숫자 0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한다.

식탁 위에 있는 사과 2개를 모두 먹어버리고 나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처럼 2-2=0이고 이때의 0은 無를 의미한다.

'정말 0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0이란 숫자가 발견되기 전(약 1500년 전)에는 200이나 202 같은 숫자를 표현할 때 0의 자리를 비워둠으로써 빠진 자리값을 표시했다.

숫자 202는 2 2, 2002는 2 2로 썼던 것이다.

하지만 이 체계로는 숫자를 잘못 읽을 가능성이 컸다.

오늘날 0이란 숫자가 없다면 200을 0없이 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글로 이백을 쓰거나, 이집트 문자로 100을 나타내는 그림을 두 번 그리면 될 것이다.

수학 문장으로는 2×5×2×5×2나 199+1, 299-99 등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다면 산가지를 모아 正으로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숫자가 커질 경우 시간이나 종이, 노력 등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렇듯 1에서 9까지의 숫자만으로 큰 수를 나타내려면 복잡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결국 0이 있었기 때문에 위치에 의한 수 표현이 가능하고 그로 인해 셈이나 수의 기록도 편리해진 것이다.

'없는 것을 숫자로 0이라 하자. 값이 없는 자리를 0으로 하자.' 간단하고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작은 발상이 수학의 발전을 가져온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0의 발견은 머리속에서나 상상했던 수를 현실세계로 끄집어 내는 역할을 한 것이다.

김현자(대구월곡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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