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한 처녀가 어머니도 없이 아버지와 두 오빠들과 함께 살았어. 어머니 없이 사느라고 온갖 집안일을 이 처녀 혼자 도맡아서 했지. 그러다 보니 바깥 구경이라고는 어쩌다 우물에 물길으러 갈 때밖에 못 했어.
하루는 물동이를 이고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갔는데, 거기서 어떤 총각하고 딱 마주쳤어. 그게 누구냐면 그 마을 부잣집에서 머슴살이하는 총각이야. 총각도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으러 왔다가 만난 거지. 둘이서 이것저것 도와 주고 거들어 주고, 이렇게 하다가 서로 마음이 쏙 끌렸어.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물가에 가서 만났지. 그러다가 둘이 서로 혼인 약속까지 하게 됐어.
하루는 처녀가 몸이 아파서 우물가에 못 나가니까 총각이 걱정이 돼서 처녀 집에까지 찾아왔어. 담 밖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넘겨다보는 걸 아버지와 오빠들이 딱 잡았지.
"네 이놈! 머슴살이하는 주제에 감히 여염 처녀가 사는 집을 기웃거리다니, 아주 몹쓸 놈이로구나."
흠씬 두들겨 패서 내쫓고, 그 다음부터 처녀를 집 밖에 한 걸음도 못 나가게 하는 거야. 아주 옴짝달싹도 못 하게 해. 처녀는 집에 갇혀 지내면서도 총각 걱정만 했지. 그러다가 얼마 안 되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듣게 됐어.
"건넛마을 부잣집에 너를 시집 보내기로 했으니 그리 알고 있어라."
다음 달로 혼인날까지 받아 놨다는 거야. 처녀는 마음에도 없는 시집을 가게 된 것이 억울해서 울었지만 소용이 있나. 혼자서 며칠 동안 울면서 애를 태우는데, 아 이번에는 더 기가 막힌 소문이 들리네. 총각이 죽었다지 뭐야. 이 처녀가 다른 데로 시집가게 됐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래.
처녀 집에서는 혼인날이 다가오니까 혼수를 장만하느라고 이것저것 옷을 지었어. 처녀는 혼인날 자기가 입을 옷에다 날마다 식초를 뿌려서 바삭바삭하게 만들어 놨지.
이러구러 혼인날이 다가왔어. 처녀는 새색시 옷을 차려입고 연지 찌고 곤지 찍고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가게 됐지. 가다가 총각 묻힌 무덤 옆을 지나게 됐거든. 이 때 처녀가 교군꾼더러 잠깐 가마를 세워 달라고 부탁을 했어. 교군꾼들이 가마를 세우니, 처녀는 얼른 가마에서 내려 총각 무덤으로 다가갔어. 그리고 무덤을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울었지.
"나를 놓아 보내려거든 그대로 있고, 나를 불러들이려거든 무덤을 열어 주세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덤 가운데가 스르르 열리면서 커다란 문이 생기더래. 처녀는 곧장 그 문으로 들어갔지. 이 때 이것을 보던 사람들이 쫓아와서 처녀 옷자락을 붙잡았어. 그런데 옷에 식초를 뿌려서 바삭바삭하게 만들어 놓은 탓에, 옷이 잡는 족족 죽죽 찢어지는 거야. 잡으면 찢어지고, 잡으면 찢어지고, 이러니 잡을 수가 있어야지.
이래서 처녀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고, 무덤은 다시 스르르 닫혀서 원래대로 딱 붙어버렸어. 그리고 무덤 앞에 흩어진 옷자락 조각은 곧장 흰나비가 되어 하늘로 나풀나풀 날아오르더래. 그러자 어디선가 노랑나비가 날아와 흰나비와 함께 춤을 추며 너울너울 날아가더래. 사람들은 다 그 나비들이 처녀 총각의 넋이라고 믿었단다.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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