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원로 국문학자 이희승은 수필 '딸깍발이'를 발표해 화제를 낳은 적이 있다.
그는 이 수필에서 굶기를 밥먹듯 하고 행색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지만, 나름대로 청렴한 생활 신조를 지켰던 '남산골 샌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딸깍발이'란 옛날 남산골에 모여 사는 가난한 선비들이 비 오는 날에 신는 나막신을 돈이 없어 마른 날에도 신고 다녔는데, 이때 신발에서 나는 '딸깍딸깍' 소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무한 욕망의 세태에서 그런 '딸깍발이'를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앙큼한 자존심'과 '꼬장꼬장한 고지식'은 각별했다.
결코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게 아니었으며, 민족과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유관 황희 맹사성 허종 등은 청백리(淸白吏)로 유명하지만, 청백리건 딸깍발이건 선비 정신에 그 뿌리가 있다.
지금 공직자들에게 청빈(淸貧)을 강요할 수는 없을지라도 청부(淸富)는 여전히 사회적 덕목이 아닐까.
▲청빈한 법관으로 '딸깍발이 판사'라 불려온 조무제(趙武濟) 대법관이 어제 34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나면서 '법관 고독론'을 펴 회자된다.
'보편성을 잃은 주장이라면 법관은 아무리 목청 높게 눈앞에 다가서는 여론이라 할지라도 초연해야 한다'고 사법부의 독립을 강조한 그는 보편적 사고를 위해 고독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지역 법관 출신인 그는 지난 1993년 첫 공직자 재산 공개 당시 신고액이 6천434만원에 불과한 데다 98년 대법관 취임 때도 신고액이 7천만원이었을 정도로 청빈했다.
대법관이 돼서도 5급 비서관을 두지 않고, 원룸 오피스텔에서 자취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이런 모습대로 대법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으며, 모교인 동아대 법대 석좌교수로 강단에 설 예정이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궁핍한 삶 속에서도 의기와 지조를 지키면서 인간의 도리를 다했던 전통적인 선비상이 허물어졌다는 한탄이 나온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공분의 대상이 돼 온 것도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얼어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는 지조와 기개, 청렴.예의.염치를 잃지 않는 선비 정신이 아쉬운 세태가 아닐 수 없다.
조무제 대법관의 퇴임 모습이 실로 아름답다.
이태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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