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 없는 경쟁체계 철통경제 만든다
중국 상하이(上海)의 구 시가지에서 푸둥(浦東) 신구로 가는 도로의 운전자들은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출'퇴근시간은 물론 밤 10시가 넘어도 이어지는 교통체증 때문이다.
시 정부가 '자동차 번호판 경매제'라는 비상수단까지 동원해 가며 차량 억제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주차장을 방불케하며 도로를 가득 메운 GM, 폴크스바겐, 도요타, 현대 등 세계 각국의 외제차들은 20층 이상 빌딩이 2천 채를 넘는다는 마천루 숲과 함께 날로 성장하는 상하이 경제력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중국 경제의 용머리
최근 상하이를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은 "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변화와 성과를 느낄 수 있다"며 상하이를 치켜세웠다.
중국 현대화를 이끄는 중심인 상하이가 앞으로도 개혁.개방을 계속 이끌어나가달라는 주문이었다.
상하이 경제의 고속성장은 중국 내에서도 단연 두드러진다.
상하이시 통계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상하이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동기 대비 14.8% 증가했다.
1인당 GDP는 5천700달러로 2위 베이징(3천800달러)을 멀치감치 따돌리고 있다.
대외무역은 지난해 동기보다 51.9% 증가했으며 외자기업의 수출은 지난해보다 65.6% 늘어났다.
상하이에는 현재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276개가 진출해 있으며 다국적기업의 아시아지역본부도 61개에 이른다.
특히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가 '중국 경제의 용머리인 상하이의 여의주'로 표현한 푸둥지구는 다국적기업의 각축장이다.
상하이를 관통하는 황푸(黃浦)강 동쪽에 위치한 푸둥지구는 지난 90년 설립된 중국 유일의 '금융무역개발구'로 외국은행 46개가 영업 중이고 증권'외환'선물거래소 등 7개 금융시장이 집결돼 있다.
황푸강 연안 와이탄(外灘)지역은 뉴욕 타임스스퀘어, 도쿄 긴자 등을 제치고 세계적 기업들의 '광고 1번지'로 떠올랐다.
한국무역협회 송창의(48) 상하이지부장은 "베이징이 중국 산업의 머리에 해당한다면 상하이는 몸통에 해당한다"며 "뛰어난 인프라를 바탕으로 홍콩'싱가포르를 대체할 비즈니스센터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밥통은 없다
루신(魯迅)이 '중국 봉건사회 최후의 위대한 상인'이라 일컬었던 19C의 중국 최고 거부 후쉬에옌(胡雪巖) 등 수없이 많은 거상의 고향인 상하이는 그 후손들 답게 철저히 경제적으로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타 지방사람들에 대한 우월감과 배타심은 중국 내에서도 유명하다.
주동팡(朱東範.34) 상하이 푸양철강제품유한공사 경리는 "상하이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강하다"면서 "다른 지역 사람들도 상하이를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곱게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국제화시대 경제 허브로서는 오히려 바람직한 덕목이 되고 있다.
공무원들은 덜 권위적이고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돼 있으며 기업인들은 신용을 중시한다.
다른 도시에서는 술이 있어야 비즈니스가 이뤄지지만 이 곳에선 술이 필요하지않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다.
중국에서 14년째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는 김태현(46) 코리아홈쇼핑 지사장은 "중국 여러 도시에서 근무했지만 기업환경은 상하이가 단연 최고"라며 "공무원들도 흔히 말하는 '관시(關係)'를 맺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상하이 시정부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국에서 처음으로 고위 공직을 외국인에게 개방할 방침이다.
외국 정부관료나 기업체 전문경영인을 국장급으로 임용, 도시 행정과 기업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겠다는 것. 이와 관련, 상하이 시정부는 2010년 세계박람회를 앞두고 내년까지 해외 교육'취업경험이 있는 1천600명을 선발, 행정부문과 국유기업에 배치키로 했다.
기업 수준의 경쟁체제 도입도 공무원들을 뛰게 하는 요인.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퇴출시키는 대신 유능한 인재는 과감히 발탁, 능력 위주로 인사를 펴고 있다.
평가성적이 나쁠 경우 조기퇴직 압력과 함께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현재도 40세 이하 공무원의 비율(49%)은 중국 전체 비율(59%)보다도 많이 낮은데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앞으로 이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과감한 개혁과 공직기강 확립
최고시속 430㎞를 자랑하는 자기부상열차 '상하이 마그레브(Maglev)'는 푸동 국제공항과 푸동 상업지구간 30㎞를 7분30초만에 주파한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주룽지 전 총리 등 중국의 중앙정치 무대에서 성공한 이른바 상하이방(上海幇)을 배출한 상하이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도 이 열차만큼이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상하이는 실제로 경제뿐 아니라 공직 개혁에 있어서도 중국의 선두주자다.
공무원들의 의사소통 능력 향상을 위해 올해부터 모든 공무원들에게 영어능력 검정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인사에도 반영하고 있다.
시 인사국 한 관계자는 "2005년까지 30세 이하 공무원은 3급 이상, 30세 이상은 2급 이상에 도달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영어 구사능력은 국제화에 있어 필수"라고 강조했다.
또 행정력 낭비 예방을 위해 최근 각종 행사와 회의를 최대한 줄이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회의시간도 2시간을 넘지않도록 방침을 세웠다.
특히 매주 목요일은 어떠한 회의도 열지않아 공무원들이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행정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항목을 절반 가량 축소하는 대신 행정서비스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인허가 관련 업무는 관련기관에 넘기고 모든 산하조직에는 민원인들을 위한 핫라인과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상하이는 지난 해 중국 200개 도시 경쟁력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구시 명예자문관인 박영진 한섬무역 대표는 "관료들의 부패가 없진않지만 관리들의 업무수행 능력, 청렴도는 기대 이상"이라며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성장 핵심축이 되고 있는 하이구이파(海歸派) 고위관료들은 말 그대로 뛰어난 프로페셔녈들"이라고 전했다.
상하이.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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