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여류비행사 박경원 사망

입력 2004-08-07 11:01:14

1933년 8월 7일,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朴敬元)이 비행 중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박경원은 1921년 안창남(安昌男)이 우리나라 최초로 비행사가 된 지 4년만인 1926년 12월 28일, 일본 가마다(蒲田)의 비행학교에서 비행사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동양권에서도 최초로 여자 파일럿이 됐다.

1901년 대구의 상당히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간호사 일을 하던 중, 1922년 12월 10일 용산 연병장에서 안창남의 시범비행 연습을 구경한 뒤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리고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1924년 12월 일본으로 떠났다.

비행사 박경원의 가장 큰 꿈은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기술상 태평양 횡단은 보통 위험천만한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조국 방문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높아 그는 먼저 일본에서 한국으로 비행을 실행하기로 했다.

여의도 상공에서 시범 비행을 하기로 결정한 박경원은 드디어 1933년 8월 7일 아침 10시 35분 하네다 비행장을 이륙했다. 그러나 그의 꿈을 실은 청연(靑燕)은 11시경 하코네 상공을 통과하고 나서부터 통신이 두절되고 말았다. 짙은 안개로 인해 일본의 현악산(玄嶽山)에 추락했던 것이다.

한국 최초 여류비행사의 역사는 이렇게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1906년 조선, 만국적십자조약 가입 ▲1953년 평양방송, 박헌영 등 남로당계 인사 12명 숙청 발표 ▲1960년 피델 카스트로, 쿠바내 미국자산 몰수 선언 ▲1999년 국내 첫 냉동난자 수정 아기 탄생.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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