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의 역사

입력 2004-08-06 09:12:47

브라이언 이니스 지음·김윤성 옮김·들녘 펴냄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12시간을 그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는 종교재판에 회부된 예수를 로마 병사들이 잔인하게 고문하는 장면이 인상깊게 펼쳐진다.

줄에 무수한 톱니가 달려있는 채찍질로 인해 뜯겨져 나가는 예수의 살점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의 특성상 과장된 표현이라고 애써 자위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브라이언 이니스가 지은 '고문의 역사'를 권한다.

지난 30년 동안 스파이, 무법 행위, 혁명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심취해왔던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역사의 뒤안길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질렀던 비인간성과 권력의 남용을 생생하게 끄집어낸다.

고문이 자행됐다는 가장 이른 증거는 기원전 약 1천300년경 이집트의 히타이트 원정 때 적의 병력 배치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람세스 2세가 포로들을 잔인하게 고문했다는 기록이다.

이처럼 고문 행위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사실에 놀라울 정도다.

게다가 적어도 3천 년 동안 고문이 합법적인 형태로 자행돼 왔고, 유럽이나 극동 지역의 법전 대부분에 고문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더욱 놀랍다.

또 가장 개명(開明)해 있다는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조차 고문을 인정했다니.

책에는 육체적인 힘, 불, 물 등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고문에서부터 가장 '섬세하고 세련된' 고문이라고 일컬어지는 벌레를 옷 속에 넣어 물어뜯게 하는 고문, 전기고문까지 지구상의 모든 끔찍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16세기 후반 네덜란드 남부에서는 가톨릭 신자를 눕혀 놓고 배 위에 예닐곱 마리의 쥐를 담은 커다란 접시를 뒤집어 올려놓고 접시에 불을 붙인다.

접시가 어느 정도 가열되면 쥐들은 희생자의 창자 속으로 파고든다.

"

이 정도는 그나마 참기 쉬운 것이라는 저자의 태도는 경악스럽다.

고문기구의 변천사로 넘어가면 떨리는 손 때문에 페이지를 제대로 넘길 수가 없다.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고문 기구 중 가장 악마적인 고통 제조기 하나를 소개한다.

'뉘른베르크의 처녀'라고 불리는 이 기구는 희생자가 안으로 들어가도록 돼 있다.

한쪽 문의 안쪽에는 넷으로 갈라져 있는 13개의 못들이 돌출돼 있고, 다른 쪽에는 8개가 더 있다.

문이 점차 닫히면서 못들은 희생자의 신체 기관들을 정확히 찌른다.

그 중 두 개의 못은 눈을 향해 있다.

섬뜩하지 않은가.

저자는 고문에 따른 인간의 잔인성이 시대마저도 초월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고문의 역사'는 바로 인간의 광기와 잔혹함의 역사 그 자체가 아닐까.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