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발전 공무원에 달렸다-(5)중국 칭다오

입력 2004-08-05 08:50:22

'사회주의 전사'에서 '비즈니스 맨'으로

'아시아의 허브(hub)'를 자처하는 싱가포르에선 요즘 경제를 둘러싸고 비관론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인구 13억명이란 초거대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싱가포르의 '물류.금융 중심'이라는 위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GM이 지난 6월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를 중국으로 옮길 계획이라고 밝히는 등 유수한 다국적기업의 아시아본부가 잇따라 싱가포르를 떠나면서 위기감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외자 유치만큼은 '세계 최고'라던 싱가포르를 불안 속에 몰아넣고 있는 중국의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세계 경제의 블랙홀

중국은 흔히 '세계 경제의 블랙홀'로 비유되곤 한다.

전 세계의 기업과 자금이 저렴한 땅값과 인건비, 거대한 수요 등 최적의 투자조건을 갖추고 있는 중국 시장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지속적으로 중가하고 있는 추세다.

중국 상무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6월 말까지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지난해보다 11.99% 늘어난 338억 8천300만달러나 된다.

새로 설립된 외자기업 역시 14.89% 증가한 2만1천688개로 집계됐다.

중국은 지난해 530억달러의 FDI 유치를 이끌어내 사상 처음으로 미국(400억달러)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그런 중국에서도 특히 칭다오(靑島)시는 한국 중소기업들에게 마치 '약속의 땅'이나 된 듯하다.

칭다오시에 따르면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5천700개에 이르며 지난해 한국과 칭다오의 교역은 칭다오 전체 교역량의 23.5%인 41억9천만달러에 달했다.

지금까지 총 투자금액은 한국의 대(對) 중국 투자액의 25% 가량인 55억달러.

또 중국 내에서 가장 많은 5만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고 식당, 주점, 찜질방 등 시내 곳곳마다 한글 간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서 있는 '거대한 한국촌'이다.

이 때문에 칭다오는 지난달 3일부터 9일까지 대대적인 '한국주간' 행사를 여는 '배려'를 보이기도 했다.

쑨헝친((孫恒勤.39) 칭다오시 대외무역경제합작국 부국장은 "칭다오의 상위 20개 수출기업 중 한국기업이 12개"라며 "중국 투자의 절반은 산둥성에서, 산둥성 투자의 절반은 칭다오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투자환경 조성 선두엔 공무원

칭다오에 이처럼 많은 한국기업들이 몰리는 것은 뛰어난 투자환경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펴낸 칭다오공단 투자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현지 생산직 근로자의 월 임금은 7만~11만2천원 수준이다.

토지취득가는 평당 4만8천510원이며 법인세도 한국의 절반 수준인 15%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의 이같은 급성장은 공무원들의 외자유치 열의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기업인을 만나면 대부분 공무원을 칭찬하는 말을 잊지않는다.

외국기업 유치에 열성을 다하는 공무원들의 의지와 노력이 인상적이란 것.

칭다오 청양(城陽)구에 있는 세정악기유한공사 천만영 경리는 "공장 앞에 화단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니 며칠 후 구청에서 화단을 새로 만들어 줬고, 공장 설립도 한국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며 "공무원들이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한 국가 발전이라는 비전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중국 관료를 보는 시각도 비슷하다.

지난 94년 칭다오시 사방구와 우호교류협정을 맺은 대구 달서구청의 한 공무원은 "대구를 방문할 때 중국공무원들이 준비해오는 투자홍보 자료의 수준과 양에 깜짝 놀랐다"며 "구청장과 직원이 격의없이 토론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관료주의로 악명높던 중국 공무원들의 모습이 이처럼 '비즈니스맨'으로 바뀌고 있는 원동력은 인센티브제도. 국가가 정책적으로 외자유치 드라이브를 걸면서 철저히 투자실적에 따라 평가하니까 공무원들이 발벗고 뛴다는 것이다.

도시마다 지급률은 다르지만 칭다오의 경우 총 투자금액의 1~5%라는 파격적인 금액을 지불, 공무원들이 외국인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고 있다.

투자유치 실적은 승진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방정부 지도자들 사이에는 물론 자치단체들간 경쟁도 치열하다.

칭다오시 한 관계자는 "요즘 칭다오에는 상하이를 배우고 쑤저우를 뛰어넘자(學上海 超蘇州)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며 "칭다오시 차원에서 국제화도시 만들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관료

칭다오에서 만난 공무원들이 한국사람과 처음 만나면 하는 인사는 '우리가 남이가'였다.

식사 반주로 나오는 맥주를 마실 땐 '위하여'를 외쳤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오히려 더 자본주의적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를 넘어서 무섭기까지 했다.

칭다오시 한인상회 김진상(50) 회장은 "기업 서비스 마인드면에선 한국 공무원들이 중국 공무원을 쫓아가기가 힘들 정도"라며 "직접 찾아다니며 문제 없느냐고 확인하는 자세야말로 배워야할 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국에서 온 한 기업인은 "우수한 공무원들은 외국기업에 스카우트되기도 하지만 관료 가운데 뛰어난 인재들이 많다"며 "보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기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애국심이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3대 명문대학의 하나인 칭화대학 경제학 석사 출신인 이빈 칭다오시 종합신문처장은 "중국 공무원들의 급여 수준은 민간기업에 비해 많이 적은 편"이라면서도 "돈보다는 성취감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묻지마 투자'는 곤란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중국의 투자유치담당 공무원들이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사전조사 및 법령검토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무용기기 제조업체인 SPC 김종명 사장은 "기업 설립 뒤 세무'노동국에서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며 "뭐든지 다 해준다는 식의 공무원들도 문제지만 뭐든지 다 될 것이라고 믿는 한국인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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