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를 읽으면 트렌드가 보인다-(4)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주부들

입력 2004-08-03 15:00:24

학교가 믿음 안가니 별 수 있나요

치열한 교육경쟁 시대. 본지 초청으로 모인 학부모들의 대화속에서는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들을 공부로 내몰아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넘쳐났다.

그러나 어쩌랴. 초.중.고교에서부터 서열이 매겨지는 변종 계급사회가 계속되는 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것. 이런 상황에서도 좀 더 나은 교육과 교육환경 조성에 대한 참석자들의 열의는 대단했다.

-부모라면 자녀교육을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는데 힘든 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지요.

▲남영주=오늘의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네요. 아줌마들이 자녀교육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닙니까.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을 보면 너무 불쌍해요. 어쩌다 이런 현실이 됐는지 몰라요.

▲박정향=학교에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게 안되니 밤 9시 넘어 학원을 가면 12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자는 남편을 깨워서 애를 데려오려니 서로가 여간 고달픈 게 아니에요.

▲이호식=학교 교육이 갈수록 걱정입니다.

교사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니 애들 통제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여하튼 학교 교육에 믿음이 안가는 게 문제입니다.

▲김범헌=우리 사회가 교육을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 생각하니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겁니다.

작년에 애를 외국에 보낸 이유에는 이런 교육 현실도 한몫을 했습니다.

▲남=애가 고3이 되고부터는 가족여행 같은 것은 생각도 못 합니다.

아침에 학교에 태워주고 밤에 또 데려와야 하니 모든 생활이 애한테 맞춰지는 겁니다.

▲이=아침, 저녁으로 학교 앞은 북새통입니다.

아이도 점점 학년이 올라갈수록 표정이 없어집니다.

공부를 재미있는 놀이로 생각하도록 해야 되는데 공부 때문에 갈수록 힘들어 하니 여간 가슴 아픈 게 아니지요.

▲박=저는 전업주부가 아니어서 교육에 대한 정보 부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일 때문에 애한테 전념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정보까지 부족하니 답답합니다.

-학원이나 과외 교사 고르기도 힘들고 교육비도 만만찮지요.

▲박=주부들은 과외비 때문에 시장을 안 갑니다.

먹는 거는 대충대충 먹더라도 자녀 교육비는 줄일 수 없는 게 현실 아닙니까.

▲김=주변의 의사 친구를 보니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위해 월 500만원을 쓴답니다.

친구가 지출하는 게 그 정도인데 부인이 쓰는 돈까지 하면 더 쓴다고 봐야지요.

▲이=저는 학원비 때문에 우리 애가 다니는 같은 반 학생들 성적표를 갖고 와 그룹을 짭니다.

그런데 팀을 짜는 것도 공부 잘하는 애, 못하는 애들끼리 마음이 안 맞아서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남=저는 애를 학원에 안 보냅니다.

'일류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밥 먹고 사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가족의 행복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가족의 행복만 추구하다 보니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고… 여하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에요.

-여기도 '기러기 아빠'가 한분 계신데 자녀교육 때문에 외국으로 떠나는 학부모들이 점점 많아진다지요?

▲남=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니 아예 외국에 나가버릴까 생각한 것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김=애를 외국에 보낸 뒤 처음에는 걱정을 했지만 애가 행복해 하니 선택을 잘 했다는 생각입니다.

처음 6개월 정도는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한국과 캐나다 교육을 조목조목 비교해 가며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운동에 관심도 없던 애가 거기서는 테니스, 탁구, 수영 등 체육 전 종목을 다 하고 있어요.

▲이=그렇지만 가족이 떨어져 있으니 너무 외롭지 않으세요?.

▲김=평일에는 사업 때문에 괜찮지만 주말은 정말 문제입니다.

주말에 식당을 갈라치면 대부분 가족끼리 외식을 하고 있는데 별다른 약속도 없이 혼자 밥을 먹으려니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교육 정상화에 방법이 없겠습니까.

▲김=자본주의는 경쟁시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학은 엘리트 중심으로 가야 되는데 누구나 다 4년제 대학을 가야 하는 것처럼 돼 있으니 청년 실업 등이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가 60,70세가 돼도 애들을 먹여 살려야 할 판입니다.

▲남=저는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제도가 바뀌면 된다고 봅니다.

대기업에서 특기와 적성을 감안해 전문대생을 뽑아준다면 치열한 경쟁은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박=사회 지도층이 우선 변해야 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도 있지만 지도층이 저만 잘 살겠다고 하는 한 교육도 별로 달라질 게 없다고 봐야지요.

▲이=일단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부모들인 우리가 먼저 자기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곤기자 leesk@imaeil.com사진: 자녀교육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하는 학부모들. 왼쪽부터 박정향.남영주.이호식.김범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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