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문화거부의 풍조를 개탄한다

입력 2004-08-03 13:53:23

최근 대선, 총선을 거치면서 이상한 풍조랄까, 기류가 이 사회에 흐르고 있어 적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염려스럽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 거부 현상이다.

가장 비근한 예가 학력-대학-지식에 대한 조롱, 비하, 거부의 공공연한 언행이다.

지금은 물밑으로 가라앉은 듯하지만 한때 모 국립대 폐지론이 거칠게 제기됐었다.

이유인즉, 그 대학 출신들이 사회의 온갖 요직을 독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 대학 진학을 위한 병폐가 극심하다는 것.

소도 웃을 이유이다.

그것은 그 학교가 좋은 학교이기 때문 아닌가.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자리로 진출하기를 원하고, 따라서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회의 움직임이며 자연의 순리다.

이를 빌미삼아 그 대학을 없애면 그 다음 좋은 학교인 A, 또 그 다음의 B, 이런 식으로 해서 C, D, E…등 대학을 폐지하고, 마침내 마지막 남은 대학도 없애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문제를 지적하자면 모든 대학들이 그 국립대, 혹은 그 이상의 수준을 향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대학 역시 새로운 자기쇄신은 지극한 당위이다.

이 당위는 대학이 대학다워져야 하는 오메가 포인트이다.

대학이 대학다워져야 한다는 뜻은 대학이 단순한 교육기관 이상의 기관, 즉 참다운 문화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의무교육기관이 아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대학이 없어도 그 사회의 구성원은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대학은 단순 생존 그 이상의 의미에서 그 존립의 명분이 나온다.

그것이 문화다.

우리는 생존만으로 만족할 수 없으며, 적어도 '문화적 생존'을 지향한다.

숱한 개념의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본질은 여전히 '섬세'와 '세련'에 있다.

생존에는 왕도가 없다.

그러나 문화적 생존에는 갖추어야 할 원칙이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물질적 실존, 육체적 실존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때가 많지만 문화는 그 이상이어야 한다.

어떻게 사는 일이 인간적인 삶, 바람직한 삶, 올바르고 멋있는 삶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의 자세와 훈련이 곧 문화다.

그러므로 문화는 거칠고 야생적인 것, 날것, 원시적인 것, 소박한 것의 극복으로부터 고안되고 산출되는 그 어떤 것들, 그러니까 세련되고 섬세한 것들의 총칭이다.

단순 소박한 야생은 그 자체로 원시적인 힘이지만, 아직 분화(分化)되지 않은 자연일 뿐이다.

문화는 그 미분화된 세계를 분석하고 종합하기를 거듭하면서 인간들만이 이룰 수 있는 미세한 정신을 창출한다.

과학과 예술은 그 대표적인 범주다.

어디 이들뿐이랴. 현실적으로 그 힘이 강력하게 발휘되는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도 그 섬세와 세련은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가령 함부로 내뱉는 언어는 정치와 경제를 미개 수준으로 추락시킨다.

17대 국회의원이 된 어떤 30대는, 자신은 학력도 높지 않고 대중적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대통령으로 지지했다고 씩씩하게 밝힌 바 있는데, 이런 마음씨는 세련과 섬세를 본질로 하는 문화적 태도와는 거리가 있다.

정치 행위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우리 사회에서 마치 문화 거부를 자랑삼는 듯한 위정자의 발언은 참으로 듣기에 민망하다.

대중적 언어라는 그럴 듯한 표현은 결국 문화를 솔직하지 못한 '포장'쯤으로 여기기 십상이며, 막말을 오히려 소박한 정직성으로 미화시키기 일쑤다.

우리 사회를 분별없는 무질서 그리고 엽기적인 폭행의 분위기로 만들고 있는 온갖 폭언의 요람도 결국 이곳이다.

네티즌들의 일반적 행태가 되어버린 욕설과 막말은 폭언을 거쳐 폭행으로 성장하고, 끔찍한 범죄의 유충(幼蟲)이 된다.

'살인'과 '잔혹'을 제목으로 삼는 영화들이 뜨고, 이어서 대량 살인이 현실화되는 이 폭언사회에서 우리 모두 공동정범의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학문과 예술을 존중하고, 그 핵심인 점잖은 말의 운용을 실천하는 일은 그 분야만의 그럴싸한 멋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삶이 좀 점잖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거친 말들로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들은 온유한 문화의 체를 통해 나타날 때, 보다 깊은 울림으로 사람의 가슴을 적시고 사회를 움직인다.

공부 좀 합시다.김주연 문학평론가·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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