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일화-(4)91년 '시나리오 선거'

입력 2004-08-03 09:00:12

'막걸리 선거'와 '고무신 선거'에서 '시나리오 선거'까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지 3개월이나 지났지만 선거부정 시비로 몇몇 대구'경북 의원들이 아직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법 당국의 수사결과가 궁금하다.

선거 역사만큼 선거 부정의 역사도 길다.

특히 선거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 탓에 우리나라의 선거는 막걸리 한잔, 고무신 한 켤레에 표를 팔기도 했다.

온갖 부정과 비리가 동원됐으나 그 진실은 세월속에 가려져 왔다.

부정선거 참여자들도 침묵했다.

지난 1952년 시작됐던 지방의회 선거는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정권 수립 이후 중단됐다가 1991년3월26일(기초의원)과 6월20일(광역의원)에 지방의회 선거가 다시 치러졌다.

당시 내로라 하는 지역의 명망가와 기업가, 정치 지망생들이 너도 나도 선거전에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했다.

또 선거 부정이 곳곳에서 자행됐고 행정당국도 한몫 거들었다.

선거를 바로 눈앞에 둔 1991년3월 대구의 일부 지자체는 부정선거 단속은 외면한채 오히려 특정인의 당선을 위한 작업을 하다 물의를 빚었다.

소위 '시나리오 선거'가 그것. 기초의회 의장 후보인물까지 사전에 정해 놓고 그를 당선시키기 위한 전략까지 마련한 것이다.

당시 한 지자체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A씨를 의장으로 하는 방안과 B씨를 의장으로 하는 방안, 두가지 안을 마련하고 출마시 당선 가능성과 선거전략 및 지원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 수립해 놓았다.

이 시나리오 선거 계획안이 세상에 알려져 청와대와 정보기관 및 경찰 등이 진상파악에 나서는 등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단체장과 관련자들은 '시나리오 선거' 문건의 존재를 부인했다.

오히려 이를 문제 삼는 행위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 등 행위라며 사법처리를 의뢰할 것을 한 때 검토하는등 발뺌에 여념이 없었고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파문은 가라앉았다.

세월이 흐른뒤 몇몇 공무원은 당시의 다양한 선거부정을 털어놓으면서 부끄러웠던 과거를 고백했다.

"원래 옛날 선거는 그런 것 아니었습니까. 미리 관련 기관들과의 긴밀한 협의하에 선거부정이 이뤄졌는데 대구에서만 그런 현상이 빚어진 것은 아니었어요. 선거 때 마다 수시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갖고 '누구 누구를 당선시킬 것인가' 등에 대해 작전을 짜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

이제는 행정 공무원이 개입하는 선거부정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됐다.

격세지감이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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