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여름 이후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겨울 삭풍을 이겨낸 보리는 봄 가뭄에 말라죽었고 많은 농민들이 모내기를 포기했다. 종자로 남겨 두었던 볍씨를 껍질째 갈아 죽을 끓여먹은 지 오래다. 볍씨 몇 알갱이에 풀을 잔뜩 섞어 끓인 죽을 맛본 것도 오래 전 일이다. 가뭄과 기근으로 몸살을 앓는 조선전기 전국을 둘러봤다.
-전문-
아침 일찍 산으로 솔잎을 뜯으러 갔던 아낙이 사립문을 열고 들어선다. 비쩍 마른 개가 주인을 반길 뿐 아무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과 노인들은 종일 그늘에 드러누워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아낙의 바구니에는 솔잎과 소나무 껍질, 느릅나무 껍질, 썩다만 도토리, 칡뿌리 등 구황식품이 구분 없이 담겨 있다.
"이제는 마을 인근에서 솔잎 구경하기도 힘듭니다. 오랜 가뭄으로 너도나도 솔잎을 훑었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며 먹을 만한 것은 모조리 긁어왔습니다." 아낙은 소나무 껍질과 느릅나무 껍질, 칡뿌리가 든 바구니를 비스듬히 기울여 보여준다. 아직 조선에는 감자와 고구마 등 구황식품이 보급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신 풀뿌리와 나무 껍질로 연명한다.(※참고: 고구마는 18세기 중엽, 감자는 19세기 전반기에 조선에 들어왔다)
아낙은 솔잎을 말려 가루로 만든 다음 콩가루를 풀어 죽을 쑤었다. 아까운 콩가루를 섞은 것은 다섯 살배기가 심하게 변비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며칠 째 솔잎 죽을 먹은 아이는 변비에 걸려 대변을 보기도 힘들다. 마당에 앉아 혼자 낑낑거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어머니는 낑낑거리는 아이의 항문을 꼬챙이로 헤집어 보지만 시원치 않다.
가뭄 피해는 이 집만의 문제는 아니다. 산골 마을 주민들은 물론이고 전국이 가뭄과 기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급기야 올 봄 금주령을 내렸다. 술을 빚어 팔거나 마시는 것을 금한 것이다. 금주령은 가뭄이 시작되는 봄에 내려 가을 추수 때 해제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올 가을에는 금주령 해제가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뭄과 기근이 계속되고 있다" 며 "아무래도 이번 금주령은 내년이나 내후년 가을에나 풀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의 금주령은 곡식을 아끼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술을 빚으면 열 사람이 먹을 곡식을 한 사람이 마셔 없애기 때문이다. 특히 소주는 곡물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금주령을 위반한 자는 엄한 형벌에 처하고 있다.
금주령도 일반의 경우 제사용, 혼례용, 약용으로는 허용하는 것이 관례였고, 정부 사신접대용과 각 전(殿)에 올리는 것을 예외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이마저 금하고 있다. 특히 세종은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대신들이 권하는 약술마저 거부하고 있어, 관계부처에서는 소금물을 대신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주령이 내려지자 선비들은 제사에 꿀물을 쓰고, 일반인들은 맹물을 쓰는 형편이다. 그러나 일부 부호들과 장사치들이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만들어 마시거나 파는 경우가 적발돼 엄한 처벌을 받았다. 경상도의 한 장사치는 곤장 100대를 맞고 산골짜기로 유배 보내지기도 했다. 특히 술을 빚어 마시는 자들 중에는 비교적 살림살이가 나은 벼슬아치나 사대부들이 많아 곳곳에서 단속 관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충청도의 한 부자는 자신이 빚어 팔던 술이 적발되자 하인이 주인 몰래 한 짓이라고 발뺌하다 사실이 들통나 곤장 100대를 맞았다.
정부 관계자는 "가뭄과 기근이 계속돼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 며 "금주령을 어기는 자는 일벌백계로 다스릴 것"이라고 밝혔다.
가뭄과 기근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많다. 민간에서는 산꼭대기나 냇가 등에 제단을 만들고 제를 올린다. 제주(祭主)는 통상 마을과 지방관청의 우두머리가 맡고 있다. 정부 차원의 가뭄극복을 위한 제사도 있다. 한양의 종묘, 사직단, 4대문, 한강 등에서 제를 올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정부는 올해 가뭄이 유독 심하자 12차례에 걸쳐 3품 이상의 제관을 보내 제를 주관하기도 했다.
한편 가뭄은 삼국시대 이래 백성을 괴롭히는 주요 재난으로 기록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 13회, 백제 27회, 신라 59회, 고려 시대에는 36회, 조선 시대에는 99회로 가깝게는 3, 4년 길게는 10년 단위로 심각한 가뭄이 전 국토를 유린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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