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파이팅-패러디

입력 2004-08-02 14:40:55

지난해 말부터 인터넷을 주름잡고 있는 것은 단연 '패러디(parody)'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 탄핵, 총선 등 정치권의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인터넷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형이라는 찬사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질적 수준의 문제에서부터 지나친 정치적 의도, 인신공격성 등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선거와 관련해 제작자가 처벌받는 일까지 생겼다. 최근에는 야당 대표와 대통령 패러디가 물의를 일으키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패러디 폭발 과정

패러디는 역사가 대단히 오래 된 예술의 한 형식이다. 문학 작품에서 비롯돼 만평, 만화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세계 각국의 흐름. 하지만 디지털 강국 한국에서는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 플래시 등을 통해 인터넷 패러디라는 독특한 형태로 단기간에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떠올랐다.

특히 무능하고 이기적인 정치권에 대한 일반인들의 염증을 대변하면서 패러디는 엄청난 폭발력을 갖게 됐다. '딴지일보' 등에서 출발한 패러디 붐에 직접적인 도화선을 당긴 것은 지난해 말 한 인터넷 사이트가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패러디, 연재한 '대선자객'이었다. 총 8편으로 연재되면서 10만에 이르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후 '정치본색', '노란돼지 무법자' 등을 통해 정치 문제에 본격 접근했고 탄핵과 총선이라는 기폭제를 만나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게 됐다.

패러디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형태로 확장되면서 다시 한 번 영역을 넓혔다. 이른바 불량 만두소 사건이 대표적이다. 영화 '올드 보이'와 '슈렉'의 포스터를 교묘하게 합성해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

이제는 인터넷 검색 사이트 어디에든 들어가 '패러디'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수백 개의 관련 사이트와 동호회가 뜬다. 기술적인 발전도 빠르다. 초기 조잡한 합성사진으로 시작된 인터넷 패러디는 이제 동영상까지 넘나들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패러디

자유분방한 표현과 풍자로 청.장년층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던 인터넷 패러디는 지난 3월 새로운 문제 제기에 부딪혔다.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 하는 것.

경찰은 2월부터 '하얀 쪽배'라는 아이디로 인터넷에 시사풍자 합성 사진을 올린 대학생을 연행해 조사했다. 특정 정당과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비방 합성물을 제작, 게재한 혐의였다.

네티즌들은 금세 달아올랐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과도한 법적용이라는 것. 인터넷은 사회적 공론의 주체와 주제, 형식과 내용을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곳인데 기성 체제가 법질서라는 이름으로 제재하려 든다며 반발했다.

정치 패러디와 관련된 쟁점은 몇 가지로 나눠진다. 첫째는 정치 패러디를 특정인이나 정당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로 볼 수 있느냐는 것. 이는 패러디에 묘사된 내용이 허위냐 과장된 풍자냐를 구분하는 기준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개인의 주관적 해석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둘째는 정치 패러디를 선거운동의 방식으로 볼 것이냐 자유로운 의사표현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다. 선관위는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시점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패러디는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정치적 의사표현은 일상적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고, 선거 참여의 활성화를 위해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상당수 학자들은 선거기간 중에는 엄격한 법적용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성과와 과제

실정법 위반이나 질적 수준의 문제를 떠나 패러디는 대선자금 수사, 탄핵 정국, 총선 등 짧은 기간에 이어진 굵직굵직한 정치 사건들을 거치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걸음 성숙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넷은 무수한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쉽게 만나고 소통하는 곳이다. 참여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인터넷이 엄청난 작용을 했다. 제도 정치나 여론 형성 집단, 주도적인 매체로부터 소외된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들은 인터넷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에 촌철살인의 풍자를 더하고 재미를 가져다주고 퍼나르기라는 독특한 현상을 촉발시킨 것이 패러디다.

정치 패러디 가운데는 기발한 발상으로 대중들의 인기를 누리는 수작들이 적잖다. 그러나 저급한 욕설이나 지나친 인신공격으로 일관하는 것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은 냉철하기 때문이다. 풍자의 맛을 잃은 패러디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인터넷 세상의 자정 능력은 현실 사회보다 더 높다.

그러나 기존 매체들이나 기성 집단들의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는 있다. 사전정치운동이라는 법의 족쇄를 들이대거나, 대통령 혹은 야당 당수를 패러디했다고 저급함을 공격하는 현실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의지를 밝히고, 다른 이들과 공감하고 즐기며 판단할 줄 아는 성숙한 네티즌 문화를 일구는 데 있다. 인터넷 패러디가 젊은이들의 단순한 놀이문화가 아니라 여론을 일으키고 사회 흐름을 바꾸며 개혁까지 일궈내는 사회적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항상 새겨야 한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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