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한 공직사회'부흥국가 기틀
▨선물도 신고하는 청렴한 공직자
싱가포르 기념품 가운데는 'Singapore is a fine city'라고 새겨진 제품들이 많다.
이 말엔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
'정말 멋지고 대단한 도시'라는 의미와 함께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많은 벌금(fine) 제도를 빗댄 것.
싱가포르에는 실제로 온갖 명목의 벌금이 다 있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불편을 끼치거나 도시 미관을 해치는 행위라면 모두 벌금 대상이다.
공공장소에서 침 뱉기, 담배꽁초 등 쓰레기 투기는 물론이고 공공화장실에서 물을 내리지 않아도 원화 10만원 이상의 벌금을 내야 한다.
김기봉(56) 싱가포르 한인회 회장은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싱가포르는 한마디로 법과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사회"라며 "법만 지키고 산다면 외국인에 대한 차별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최고의 엘리트집단으로 꼽히는 공직자 사회는 일반인들보다 더욱 엄한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독직, 뇌물비리 사건은 찾아보기 힘들다.
1976년 부패혐의로 체포된 국무장관 위툰분 사건, 1987년 뇌물수뢰 혐의를 받던 태 치엥완 국가개발부 장관의 자살 등이 일반인들이 기억하는 대형 비리사건의 거의 전부다.
하루가 멀다하고 말단부터 최고위층까지 연루된 공직 비리사건이 터져 여론의 성토를 받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풍토다.
개인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김모(42)씨는 "싱가포르에선 공직자가 공무로 인해 금전을 포함, 어떤 형태의 선물도 받을 수 없고 선물을 받았을 때는 신고한 뒤 상응하는 돈을 내야 자신이 가질 수 있다"며 "당연히 기업 입장에선 '불필요한 경비'를 안써도 돼 사업에만 신경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 직후 3류 국가에 불과하던 싱가포르가 '지구에서 가장 청렴한 공직사회'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엄격한 법 운용, 강력한 사정기관의 활약과 시민들의 전폭적인 신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인 반부패법인 부패행위방지법과 부패재산압류법은 부정행위로 해임된 공직자의 민간기업 재취업을 금지하고, 부정축재 재산과 형성경위가 불투명한 재산에 대해서는 판결 이전에 압류조치가 가능토록 하고 있다.
모든 공무원은 무담보 채무가 월급의 3배를 넘을 수 없고 가족 명의의 재산까지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
또 총리실(PMO) 직속의 부패행위조사국(CPIB)은 뇌물수수 혐의자를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으며 개인과 기업의 은행계좌를 추적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
국민들도 조사국의 요청이 있을 때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말단 공무원도 국가 경영 책임자
엄격한 법 집행이 싱가포르 공무원들에게 '채찍'이라면 최고 수준의 대우는 '당근'이다.
봉급을 많이 주어야 공직에 훌륭한 인재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고 부패의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논리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취임하면서 가장 신경 쓴 일도 집 문제였다.
공무원들이 집을 쉽게 마련하도록 지원함으로써 국가에 청렴하게 봉사하고 보다 열심히 일하라는 배려였던 것이다.
1990년 총리에서 물러난 뒤 내각에 자문을 해주는 선임장관을 맡고 있는 리 전 총리의 연봉도 96만 싱가포르 달러(약 6억7천만원)에 이른다.
30대 초반의 엘리트 관료들의 연봉이 30만 싱가포르 달러를 넘기도 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많이 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난해의 경우 사스(SARS)와 이라크 전쟁 등의 후유증으로 경제가 위축되자 공무원 급여는 동결됐고 장관 등 고위 공직자의 월 급여액은 1년간 최고 10%까지 삭감됐다.
민간기업의 보너스와 같이 성과에 연동되는 공무원들의 보너스 제도 역시 '싱가포르 주식회사'답다.
지난 88년 '민간부문 연동조항'을 신설, 국가의 경제 성장률에 따라 보너스를 지급하고 있는 것. 올해의 경우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11.7% 성장, 7월에 50%의 보너스가 지급되고 연말에도 목표치를 달성하면 또 보너스가 지급될 예정이다.
공무원 급여도 국가 생산성을 감안하여 결정하고, 하급 공무원이라도 단순한 근로자가 아니라 국가경영의 책임자로 인식하는 곳이 바로 싱가포르다.
조승규 싱가포르국립대(NUS) 경제학과 교수는 "이곳의 공무원들은 말 그대로 '봉사자(public servants)'로서 역할에 충실하다"며 "다국적기업 임직원 이상의 급여를 받아도 이의를 제기하는 시민은 없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사진: 3류 국가에 불과했던 싱가포르의 1930년대 모습(위)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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