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이 무더위에 떨긴 왜 떨어

입력 2004-07-26 13:04:13

36℃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로 산과 바다 도심 할것 없이 온나라가 더위 먹겠다고 아우성인 오뉴월 폭염에 무슨 까닭인지 여기저기서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노래하는 가수, 택시기사, 해군사령관, 심지어 부총리 같은 높은 사람까지 겁먹거나 불안해 하거나 '떨고'있는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

이승철이란 가수 경우부터 보자. 서정적인 노래로 인기 높은 이씨가 자신의 콘서트에 박근혜 대표를 초청했다가 일부 네티즌 부대의 공격을 받고는 당초 박 대표에게 노래 한곡 청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노래는 커녕 인사말도 뻥긋 못하고 끝냈다.

심지어 박 대표에게 '서로 피해를 보는 것 같으니 차라리 공연장에 오시지 말아달라'고까지 했다는 거다.

순수한 문화행사에까지 네편 내편 편가르기 시비를 거는 공격에 시달리다 못해 지레 겁먹고 주눅이 들어버린 경우다.

해군작전사령관은 또 어떻게 했나. 그는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왔을때 경고 사격사실을 보고에서 빼버렸다는데 그 이유가 어이없다.

미리 사격 하겠다고 보고하면 상부에서 사격중지 명령을 내릴 것 같아서 그랬다는 거다.

군인으로서 당당하고도 적절했던 대응을 하고서도 무엇이 두렵고 불안해서 보고를 숨기려 했을까. 적군에게 사격을 명령한 당찬 그 용기를 거꾸로 주눅들게 할만큼 또다른 겁나는 것이 무엇이었기에 그처럼 미리 떨었을까.

군인이 적을 앞에 두고 쏠까요 말까요 상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이상한 분위기를 본 국민들까지 불안에 떨 판이다.

경제 부총리의 경우는 더 아리송하다.

그분이 며칠전 "386세대가 정치적 암흑기에 저항 운동을 하느라 경제 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으로 우리 경제가 경제 정책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취지의 쓴소리를 했을때 모처럼 "할말 했다"는 얘기들이 나왔었다.

그런데 엊그제 "386을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어 버렸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말도 무슨 이유인지 말을 돌려 사실상 뒤집어 버렸다.

소신파로 알려진 경제 수장이 갑자기 말을 바꾸게 할만한 무서운 무언가를 봤든지 육감으로 느꼈든지 아니면 지레 겁을 먹은 경우가 아니고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바꾸기였다.

서민은 어떤가. 광주에서는 "택시 운전사들이 로또 복권에 당첨되면 노무현 대통령 임기 끝날때까지 (외국에) 나가 있겠다고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있는 자리에서 나왔다는 민심의 소리다.

복권타서 부자가 돼도 외국나가 있고 싶어 할만큼 이땅에서는 무엇이 서민까지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 대명천지 자유민주국가 체제 아래서 가수가, 택시기사가, 부총리가, 군 사령관이 뭔가 불안해 하고 겁먹고 주눅 들며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그 무엇'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그 해답의 한 가지를 보았다.

열린우리당 당의장이란 사람의 섬뜩한 발언이 바로 그 해답이다.

"우리 대통령과 우리당에 전면전의 기세로 싸움을 걸다 패가망신한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많다.

" 뒤짚어 들어보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시비걸면 패가망신 한다.

또는 시킬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릴 수 있다.

'무인시대' 드라마 용어로 말하자면 야당과 지식세력, 나아가 80% 가까운 비 지지층 국민을 '겁박'하는 말이다.

지식인이든 언론인이든 야당이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할만한 말만 뻥긋 하면 벌떼처럼 달려드는 훈련된 듯한 일부 네티즌 패거리의 독설에 만신창이가 되는 무서운 세상에 여당 의장의 막말같은 겁박까지 나왔으니 떨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눅들지 말자. 떨지도 말자. 이 더위에 떨긴 왜 떠나. 패가망신을 겁박할수록 가수는 당당히 초대손님과 같이 노래부르고 해군작전사령관은 다음에도 NLL 넘어오면 가차없이 사격을 퍼붓고 국가와 국민의 안보에 배치되는 부당한 명령이나 분위기에는 소신으로 맞서라. 지식인은 안티 네티즌패들이 떼거지로 물고 뜯어도 지성을 불밝히고, 경제 책임자는 경제가 그게 아니면 아니라고 정직하게 말하고 소신대로 포퓰리즘이 아닌 건강한 경제정책을 밀고나가라. 너도 나도 여기저기 주눅들고 떨어버리면 안보와 경제와 지성의 양심은 누가 지키나. 민심을 따뜻하고 푸근하게 보듬지 못하고 긴장시키고 떨게 만드는 전투적인 권력은 반드시 실패한다.

김정길(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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