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이상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지난해 서울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이 범인 유영철(34)씨 검거와 함께 전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유씨가 경찰에서 왜 스스로 먼저 범행을 털어놓았는지, 4차례의 부유층
노인 살해 후 왜 한동안 범행이 뜸했는지, 왜 범행 수법이 바뀌었는지 등에 대해선
아직 궁금증이 명쾌하게 풀리지 않고 있다.
모두 유씨의 마음 속 문제인 데다 아직 경찰이 유씨를 상대로 충분한 조사를 못
한 탓인데 경찰은 범행 경위와 수법, 동기 등을 수사하며 이런 부분들도 집중 추궁
할 계획이어서 수사 진전과 함께 일부 의혹들은 풀릴 것으로 보인다.
◆ 왜 범행 자백했나 = 유씨는 애초 출장 마사지 여성의 실종과 관련된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경찰에 붙잡힌 유씨는 최초 여성 실종 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마사지 여
성을 부를 때 걸었던 휴대전화에 대해선 "강서구에서 한 남녀가 싸우다 버린 것을
주웠다"고 둘러댔다.
대신 "내가 여자를 납치한 일은 없고 노인들은 많이 죽였다. 상당한 사건을 많
이 했다. 20여개쯤 된다"고 했다.
경찰은 이를 유씨가 수사진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고도의 심리전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씨 진술을 토대로 구기동과 혜화동 사건 현장 검증에 나섰으나 유씨의
진술은 계속 엇갈렸다. TV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
기가 범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범인 외엔 알기 어려운 정황 몇 가지가 유씨 입에서 나왔다. 구기동 사
건의 경우 거실 중간에 어항이 있고 침실 중간에 벽난로가 있으며 당시 숨진 강모(3
5)씨의 시신이 어떤 상태였나 등을 말한 것.
이는 언론에 보도된 일도 없고 일반 시청자로선 더욱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유씨는 이후 3차례나 간질 증세를 보여 수갑이 풀린 틈을 타 달아났다 경찰에
다시 잡혔고, 유씨의 뒷모습이 당시 폐쇄회로(CC)TV 화면에 찍힌 용의자 모습과 비
슷하다는 데 착안한 서울경찰청 김용화 수사부장이 '범상치 않다' 싶어 이례적으로
직접 신문에 나섰다.
다시 붙잡힌 유씨는 자포자기한 듯 8시간여의 조사 끝에 범행 일체를 털어놓았
다.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상태로 재차 잡혔을 때 수면제 360알을 소지하고 있었
고 "영종도에 가서 이걸 먹고 죽으려 했다"고 말했다.
더 수사를 해봐야 정확히 밝혀질 대목이지만 결국 유씨는 처음 심리전 차원에서
노인 살해사건을 털어놨고 그 과정에서 단서를 잡히면서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범행
을 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 왜 한동안 잠잠했나 =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의 마지막 사건인 혜화동 사건(
지난해 11월 18일)과 출장 마사지 여성 토막살인 사건(3월) 사이엔 넉달 가량의 격
차가 벌어져 이 기간 왜 유씨가 범행을 중단했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경찰은 4건의 부유층 노인 살해사건 후 유씨가 범행을 잠시 중단한 시기가 전화
방에서 일하던 김모(여)씨를 사귄 시기와 일치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 시기 유씨가 김씨와 만나며 심리적 안정감을 찾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경찰
은 "김씨 말에 따르면 유씨가 '뭐든지 다하겠다'며 김씨에게 매달렸다"고 전했다.
'사랑'이 살인마의 광기를 잠재웠던 셈인데 이는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전과자에 간질을 앓고 있고 이혼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가 유씨에
대해 절교를 선언한 뒤 유씨는 여성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올라 유사한 업종의 여
성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연쇄 토막살인에 나서게 된 것이다.
◆ 여죄.공범은 없나 = 경찰은 일단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유씨의 단
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여죄 부분은 수사를 벌여 더 캐고 있는 중이다.
유씨 스스로 인천 월미도에서 있었던 자동차 방화 살해사건이 자신의 소행이라
고 밝혔고 또 부산에서도 두 차례 사건을 저질렀다고 말해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
도 집중추궁할 예정이다.
부유층 사건과 마사지 여성 사건이 일어난 기간 사이에도 혹 다른 범행이 없었
는지도 당연히 수사 대상이다.
◆ 범행 수법 왜 바뀌었나 = 부유층 노인들을 살해할 땐 흉기로 머리 등을 내리
쳐 살해했으나 마사지 여성들은 살해 뒤 사체를 토막내 야산 등에 암매장했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부유층에 대한 증오와 여성에 대한 적개심이 각기 다른 살해
방식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론 마사지 여성들의 시신을 토막낸 것은 범행 장소가 자신의 집이
라 시신을 숨겨야 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부유층 노인들은 집으로 찾아가
범행한 뒤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굳이 시신을 토막낼 필요가 없었다.
잇따라 터진 부유층 노인 살해사건이 언론 등에 보도되면서 경찰의 수사가 강화
되자 아예 피해자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여 범행한 뒤 시신마저 없애는 방법으로
완전 범죄를 꾀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서울=연합뉴스)(사진설명) 18일 오전 서울지역 부유층 노인 및 전화방, 출장마사지 여성을 연쇄살인 암매장한 서울 봉원사 인근 안산계곡에서 경찰이 사체발굴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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