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사는 이경석군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이경석(12) 군의 집은 대구 동구 동호동의 한 이불공장 2층 헛간이다.
어른 한 명 누우면 꽉 차버리는 5평 남짓한 공간. 공장에서 나오는 먼지와 소음으로 하루라도 견디기 힘든 곳이지만 딱히 갈 곳이 없는 경석이와 할머니는 3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제법 적응이 될 만도 하지만 요즘 같은 여름이면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공장 기계가 뿜어내는 열기에 집안 전체가 찜통이 되지만 더위를 식혀 줄 선풍기 한 대조차 없다.
수도시설조차 없어 공장 화장실에서 물을 길러 식수나 세숫물로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비오는 날은 갈라진 벽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하루종일 양동이로 빗물을 받아내야 하지만 더위를 식힐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경석이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엄마.아빠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의 얼굴을 사진으로 봤을 뿐 "엄마"라고 불러 본 기억이 없다.
경석이가 다섯 살 때 아버지와 이혼 한 뒤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요즘들어 부쩍 '엄마'를 찾으며 잠꼬대를 자주 한다고 할머니 서순선(64)씨는 어린 손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가난을 원망하며 술로 생활하던 아버지마저 지난 2000년 빚 독촉에 시달리다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
아들과 며느리의 잇단 가출 앞에서 할머니는 무턱대고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귀여운 손자가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청소, 폐지수집, 식당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나 재작년 골다공증 및 퇴행성 관절염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고 10만원짜리 월셋방에서도 쫓겨났다.
월셋방을 전전하고 쫓겨나기를 반복하다 다행히 이웃의 도움으로 지난 2002년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요즘들어 손주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먹을 것을 찾지만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어 속이 상합니다.
" 하나뿐인 손자를 잘 먹이고 잘 입히지 못하는 할머니의 속타는 심정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게 지급하는 한 달 30만원이 수입의 전부인 할머니로서는 간식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늘 일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경석이가 최근 성적이 자꾸 떨어지는 것도 마음 한구석에 걸린다.
학용품 살 돈이 없어 잡을 수도 없이 짧아진 몽땅연필로 숙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는 가슴이 찢어진다.
"공부밖에 탈출구가 없는데 그걸 못 시키니…."
할머니는 "남들은 학원도 보내고 과외공부도 시킨다고 하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경석이를 학교에서 실시하는 무료 컴퓨터강습을 받게 하는 것이 전부"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예전에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고등학교 졸업하는 것만 보고 눈을 감고 싶었지만 지금은 될 수 있으면 오래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2대 독자인 손자가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서 자신처럼 없는 사람 도우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은 것이 할머니의 유일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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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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