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파이팅-휴대전화 번호 이동성 제도

입력 2004-07-12 08:55:10

세계 최고의 통신 강국 한국의 통신 시장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국민 4명 가운데 3명 이상이 이동전화를 사용하고, 가계 지출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 3위를 차지하는 나라. 때문에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통신 시장만은 위축되지 않은 채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다.

올해 시장을 뒤흔든 것은 번호 이동성 제도. 지난해 6월30일 유선전화에 이어 올해 1월1일부터 이동전화에 이동성제가 도입되면서 업체들 사이에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동전화를 중심으로 문제점을 살펴보자.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보통신부는 번호 이동성 제도가 전화 사용자의 불편을 줄이고 사업자간 경쟁을 유도해 서비스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고 도입 의미를 밝혔다.

소비자들로서는 번호를 바꾸지 않고도 서비스가 마음에 드는 사업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사업자들은 당연히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도록 서비스를 개선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1999년 영국 이후 이미 이 제도를 도입한 EU와 미국, 호주 등지에서는 소비자들의 사업자 변경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홍콩의 경우 업체들간의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사업자들의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 초 이동전화 번호 이동성 제도 도입 이후 한동안 급격한 이동 흐름을 보였으나 점차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누적된 서비스 포인트를 포기하거나 가맹점 서비스 등을 바꿀 만큼 번호 이동의 혜택이 없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만 하는 사업자

이동전화 사업의 후발주자 KTF와 LG텔레콤은 SK텔레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을 잠식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계속해왔다.

수성이 급한 SK텔레콤 역시 맞불을 놓았다.

사업자들은 홍보 비용을 아끼지 않았고 약정 할인 등 다양한 요금제, 편법적인 단말기 보조금 지급 등 갖가지 수단을 사용했다.

이에 다라 이동통신 3사는 상반기에만 1조5천억원 이상을 마케팅에 쏟아부은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40% 늘어난 것. 그러나 서비스 개선을 위한 설비 투자에는 손을 오무렸다.

SK텔레콤의 경우 올해 1조7천억원을 설비에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1.4분기까지 1/10도 안 되는 1천60억원만 썼다.

KTF 역시 올해 1조원을 쓰겠다고 했지만 지켜질 지는 미지수. LG텔레콤은 지난해 4천500억원이던 설비투자비를 올해는 3천600억원으로 줄였다.

◇소비자 부담은 가중

이동전화 가입자가 3천600만명을 넘는 상황에서 표준 요금제 기준 기본 요금이 1만3천~1만4천원이라면 너무 비싸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

그때마다 정보통신부는 후발 사업자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설비 투자를 위축시킨다며 반대해왔다.

올해도 경제부처에서는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가계 비중이 높은 이동전화 요금 인하를 거론하고 있지만, 정보통신부는 번호 이동성 제도로 요금 인하 효과가 나타난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자들이 설비 투자에 인색한 반면 마케팅 비용으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현실에서는 설득력이 없다.

소비자 입장에선 사업자 이동에 따라 수십만원짜리 단말기를 바꿔야 하는 부담도 크다.

지난 5월초 번호 이동 숫자가 100만명을 넘었으니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덕분에 단말기 제조업체만 신바람을 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계열 등 국내 업체들의 단말기 공급이 상반기에만 1천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의 보도 태도

신문.방송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번호 이동성 제도와 각 사의 대응 전략, 달라지는 서비스 등을 자세히 보도했다.

일반 기사로 혹은 특집 기사, 심지어 낯뜨거운 홍보성 기사까지 끊임없이 퍼부으며 번호 이동성 제도를 알렸다.

제도가 도입된 1월에는 매일 사업자별 번호 이동 숫자를 파악해 기사화했고 상반기 내내 변화에 주목했다.

그러나 정작 번호 이동성 제도의 문제점을 심층 분석하거나 요금 인하, 서비스 개선 등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기사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여기에는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퍼붓는 엄청난 광고가 크게 작용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홍보 비용을 감축하는 불경기에 광고비를 아끼지 않는 통신회사들을 '알아서 대접'한 셈. 소비자들을 직접 취재하기보다 통신회사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에 길들여진 기자들의 안일함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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