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국인의 해외관광문화

입력 2004-07-08 10:02:57

며칠 전에 나는 동남아여행을 다녀왔다.

국제회의에 참석하러 간 김에 이틀간 짬을 내어 관광에 나섰다.

사실 참석한 일행 모두가 관광을 할 여건이 되지 않을 정도로 바쁜 사람들이지만, 억지로라도 여가를 내어 좀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무리하게 일정을 잡도록 권유한 것도 필자였다.

그러나 국제회의 준비와 발표로 바쁜 틈을 내어 여가를 즐긴다는 애초의 생각은 늘 그렇듯이 패키지 관광의 여러 문제점 때문에 불쾌함으로 끝났다.

우리에게는 금쪽같은 귀중한 시간의 상당 부분이 쇼핑으로 깨졌기 때문이다.

둘째 날의 관광에서 우리는 무려 4군데의 쇼핑센터를 전전해야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영락없이 점심, 저녁을 한국인 식당에서, 그곳도 돼지 불고기와 김치로 떼우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였다.

외국에 나왔으면 그곳 음식의 진수를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쇼핑센터에 들르는 것에도 불만을 나타냈지만, 우리는 막상 한인교포들의 장황한 설명에 말려들어 진귀하다는 상품이나 약품을 거액을 들여 구입하곤 하였다.

◇ 카메라 찍기 위한 관광?

유학시절을 독일에서 보낸 나에게 유럽인의 여가문화는 여러 가지로 생각케 하는 바가 많다.

십수 년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내 독일친구가 태국 여행을 갔더니, 일본인 단체관광단이 왔더라고 한다.

이들은 어느 명승고적지에 오자마자, 3열로 나란히 섰고, 이어 한 옆에 카메라가 수 십대 쌓여지고, 안내인은 그 카메라를 일일이 들어 사진을 찍더니 바쁘게 다음 장소로 이동하더라는 것이다.

수 백 년, 혹은 수 천 년 전에 인간의 창조력이 만들어낸 위대한 예술품을 감상할 틈도 없이 그들은 오로지 사진 찍기 위해 관광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 친구는 깔깔 웃으면서 '너희도 그렇게 관광을 다니느냐'고 물었다.

이에 비해 유럽인들은 보통 관광을 할 경우, 어느 한 휴양지나 명승지에 가서 1달 이상을 체류하면서, 느긋하게 그곳의 자연이나 문화를 즐기고 그곳 사람들을 접촉하고 돌아온다.

다시 말해서 관광은 우선 여가를 즐기면서 휴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단순히 신기한 것을 즐기는 것에 못지않게 우리와는 다른 삶의 방식이나 생활환경을 접하고 그것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고 우리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관광은 민간외교이다.

최근에 중국으로, 태국으로 몰려다니는 한국 관광객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과연 그곳 국민들이 자동차와 핸드폰을 수출하는 기술한국의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하고, 나는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았다.

◇ 국민소득 2만불시대 걸맞게

지난 10년 사이에 세계적으로 민족주의 흐름이 강화되고, 이곳저곳에서 분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평화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유네스코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 '국제이해교육'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분쟁을 줄이고 평화를 증진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설치된 유네스코 국제이해교육원이 방학이 되면, 아시아태평양지역 교사와 청년을 불러 국제이해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바로 그 어느 지역보다도 서로 간에 지역적 협력이 결여되어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상호이해와 평화공존을 실현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의 현실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여행을 다녀오면서, 우리 일행은 다시는 패키지 관광에 나서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돌아왔다.

그러나 막상 여행사를 끼지 않은 관광 역시도 불편한 것 천지여서, 우리 여행사들이 다른 방식의 관광을 개발해보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여행사 간의 살인적인 경쟁 때문에 경비를 절감하고, 그 대가로 관광객을 온갖 쇼핑과 쇼 프로그램으로 뺑뺑이 돌리는 이 문화가 바뀌지 않고서는 국제사회에 비치는 한국인의 모습은 체통도 없고, 매너도 없는 속물의 이미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여망인 국민소득 2만 불의 시대는 우리 손 안에 2만 불을 쥐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소득의 향상만큼이나 교양과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국민이 되는 것이다.

정 현 백

성균관대 교수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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