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버팀목'4대보험'현주소-국민연금

입력 2004-07-07 11:57:46

노후보장보다 오늘보장이 더 문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4대보험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최근 한 네티즌의 폭로로 국민연금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고, 건강보험의 지역.직장 가입자들은 대부분이 건강보험 이야기만 나오면 분통을 터뜨린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도 마찬가지. 중소기업주들과 실업자들도 나름대로 이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복지국가를 위한 4대 버팀목이라는 이들 보험제도가 오히려 국민들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국민의 복지를 위해 만들어진 4대 보험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4대 보험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올해로 도입 17년째를 맞은 국민 연금이 성년도 채 되기 전에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문제아' 취급을 받고 있다.

'국민을 연금(軟禁)하는 연금', '궁(窮)민 연금'. '칼만 안들었지 날강도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국민연금이 최근에는 연금 수급권 제한 등의 지적과 함께 국민연금관리공단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확산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폐지 주장까지 생겨나며 사회보장제도의 맏형 역할을 했던 국민연금제도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위기의 국민연금…. 폐지 운동 확산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다가 지난 5월5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토론장에 한 네티즌이 '국민연금의 비밀'이란 글을 올리면서 마치 핵폭탄이 투하된 듯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

8개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된 이 글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국민연금을 제대로 타는 방법은 이민을 가거나 사망하는 길뿐'이라는 냉소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글에 이어 '국민연금 실체 바로알기 2번째' '국민연금 비정규직의 양심고백'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연금 폐지 운동에 불을 붙였다.

다급해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제도 보완' 의사를 밝혔지만 연금에 대한 뿌리 깊은 국민 불신을 없애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5월29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100여명이 국민연금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고, 지난달 5일에는 역시 서울 광화문에서 국민연금을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압류당해 못 살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국민연금 폐지와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겠다며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게다가 지난달 15일에는 1억여원의 빚을 안고 국민연금 납부 독촉에 시달리던 30대의 일식집 사장이 이를 비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또 지난달에 '쓰레기 만두 파동'이 생겨나자 '국민연금에 대한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측이 의도적으로 이끌어낸 것'이라는 음모론마저 네티즌들 사이에 생겨날 정도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재정부실로 '문제아' 전락

△더 내고 덜 받으라고... 얼마면 되는데?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은 지난 1999년 국민연금에 대한 대수술이 시작되면서 싹을 틔웠다.

지난 1988년 국민연금제도를 처음 도입할 당시만 해도 국민연금의 부담률은 3.0%(근로자 1.5%, 사용자 1.5%)에 그쳤다.

월 수급액(소득 대체율)은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70%에 이르렀다.

연금을 탈 사람이 적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 제도는 10여년이 지난후 수혜자들이 늘어나면서 '천사'에서 '악마'로 변신을 시작한다.

소득 대체율을 60%로 낮추고, 연금을 타는 나이도 당초 60세에서 2013년부터는 5년에 1세씩 높여 최종적으로 65세로 올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다.

정부는 '이대로 가면 2047년이면 적립금이 바닥난다'며 새로운 법 개정안을 지난해 만들었다.

연금 재정의 안정화를 위해 현행 9%인 보험요율을 2010년부터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15.9%로 올리고, 60%인 소득대체율은 2008년까지 50%로 줄인다는 것.

이에 따라 월 200만원을 버는 봉급생활자의 경우 시행 초기에 3만원만 내던 것을 현재는 9만원, 2030년쯤에는 16만원을 내야 한다.

그 대신에 돌려받는 연금액은 140만원에서 120만원, 100만원으로 감소하게 된다.

한마디로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다.

이처럼 '더 내고 덜 받는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연금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보험료 강제징수에 따른 행정 불신과 기금운영 방식의 문제점 등도 가입자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뿌리깊은 불신

공단측은 2004년 2월말 현재 135조원인 적립 기금이 2010년 328조원, 2020년 908조원, 2030년에는 1천581조원으로 늘어나지만 지출 역시 늘어 2047년에는 적자로 돌아선다며 연금요율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 불신 커져 '폐지운동' 확산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연금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정부가 제시하는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불신한다.

지나치게 장기간에 걸쳐 연금재정을 추계하고 있어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 또 지나치게 낮은 최근의 출산율을 적용해 재정이 곧 바닥난다는 데만 초점을 맞춰 국민들을 겁주고 있다는 것이다.

수 백조원에 달하는 기금을 정부가 임의대로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가입자들이 불안해 하는 대목이다.

공단의 한 간부도 "정부가 연금재정 확충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서 국민의 불신을 더 키우고 있다"며 "연금의 투명성과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험료가 공평하게 거둬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또 다른 불신을 낳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의 가입자 소득 파악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이 능력을 높이려는 시도 또한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연금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은 결국 미납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의 가입자 1천715만5천여명 중 20%에 해당하는 364만7천여명이 연금을 내지 않거나 못내고 있다.

△국민연금 어디로 가야 하나?

국민연금의 진짜 문제점은 수급 제한이나 연금요율 인상 등이 아니라 국민의 의사없이 강제로 징수한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많은 가입자들도 이같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연금이 국민 복지를 위한 것이라면 가입을 강제하지 말고 가입과 탈퇴를 국민의 자유 의사에 맡겨야 한다는 것.

◎ 불만해소 제도개선 시급

이에 대해 대구대 김태진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불안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며 "연금 재정부터 튼튼히 해야 국민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주식투자를 통해 2조3천억원을 번 것처럼 기금을 안정적이고 투명하게 잘만 운영한다면 가입자들의 부담은 물론 불만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

관계 전문가들은 또 외환위기때 IMF가 요구한 바 있는 기초연금, 기업연금, 비례연금의 3층 보장체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가하면 선진국처럼 직업훈련 중인 실업자, 출산 및 육아 휴직 중인 사람 등의 연금을 국가가 대신 내주는 '연금 크레디트' 제도 등 다양한 방법들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들이 가입안돼 노후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상당수 가입자들이 장기미납으로 압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인 만큼 극빈자의 생계 보장, 노후 최저생계 수준의 연금액 보장 등이 담긴 내용으로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한 국민들의 반발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하고 있다.

최창희기자 cch@im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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