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문사설-첩 허용...서얼 양산·갈등 원인

입력 2004-07-02 10:19:58

남성중심 왜곡된 인식 고쳐야 문제해결

남자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는 일부다처제도가 금지된다.

정부는 유교적 가족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고려 때부터 이어져오던 이 제도를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일부다처 풍속이 인구 증가에 기여하지만, 몽고풍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일 뿐만 아니라 가정 내에 심각한 갈등을 야기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일부다처는 재산 상속과 가정 내 위계를 둘러싸고 가족 간 다툼의 원인이 돼 왔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다.

이번 조치로 현재 여러 처를 거느린 사람은 여러 아내 중 한 명만 처로 규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첩으로 규정해야 한다.

게다가 처와 첩 사이의 법률적 경계가 분명해진 만큼 갈등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조치는 처에 대한 제한이 있을 뿐 첩에 대한 제한이 없다.

따라서 사대부와 돈 많은 평민은 얼마든지 첩을 거느릴 수 있다.

가정을 바로 세우겠다는 명분으로 일부일처제를 도입하면서 첩을 무한정 허용한 것은 본래의 취지를 무색케 한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앞으로 첩에 대한 사회적 천대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정 내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첩과 첩의 자식들 문제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첩 허용에 따라 생기기 마련인 서얼(庶孼)은 사대부의 자손이지만 그의 모친이 첩이라는 이유로 사대부 계층에 들지 못하고, 하급 지배 신분층인 중간 계층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들을 문.무과나 생원, 진사과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첩의 자손이 문.무 양반 관료의 등용 시험인 과거에 응시하는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와 달리 이번 조치를 입안한 대사헌 유관은 "첩을 천시하는 풍토는 제도 탓이 아니라 첩 자신에게 내재된 천한 피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즉 첩들이 대부분 여자 종 출신이거나 천민 피가 섞인 만큼 천대하는 풍속 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식에는 오류가 있다.

종이나 천민을 규정한 것이 이미 잘못된 제도 탓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제약은 마치 신라시대의 골품제도를 보는 듯하다.

성골, 진골 및 각 두품에 따라 관직을 제한함으로써 신라는 많은 불만 계층을 양산했고 결국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개인의 자질이나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던 신라의 골품제도가 신라를 쇠약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듯 조선도 예외일 수 없다.

처첩 제도는 벌써부터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황상과 김우가 기생 한 명을 두고 서로 첩으로 삼기 위해 대낮에 거리에서 소란을 펼치기도 했다.

태종 7년에는 궁중 잔치를 맡고 있는 기생을 고위 관료들이 개인첩으로 삼아 국왕이 까닭을 묻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다.

위로는 대신으로부터 아래로는 선비와 서민에 이르기까지 첩에게 집안 일을 관리하게 해 본처와 문제를 일으키거나 상해를 입히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가족질서 회복을 위해 일부일처제를 표방했다.

그러나 남성의 욕구 충족을 위해 축첩과 기녀를 제도화하고 있다.

양반 관료들과 재산이 있는 자들은 조건이 허락하는 한 축첩에 골몰하고 있다.

국왕도 마찬가지이다.

국왕은 자식을 많이 보아 왕실을 튼튼히 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명의 후궁을 두고 있다.

국왕과 사대부들이 이처럼 왜곡된 가정을 형성하는 한 서민층의 왜곡된 가정 구성을 바로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는 가정 내의 비애, 자신의 노력이나 자질에 상관없이 삶에 제한을 부여하는 사회적 불평등, 이 같은 비합리성의 정점에 축첩제도가 있고 남성중심의 왜곡된 권력이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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